최동선 <전 한인회장>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요즘에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처럼 주고 받는 말이다. 보통 우리네 휴가가 여름에 집중되어 있으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줄 알면서도, 누군가가 묻기라도 하면, 웬지 며칠이라도 어딘가를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여유가 되어 어디든 무더위를 피해 쉬고 올 수 있는 장소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또 다른 여름을 지내고 오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겨울휴가를 선호하면서도, 여름휴가를 떠나는 무리에 끼지 않으면 왠지 너무 여유없이 사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것같아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그동안의 나의 일상이 ‘바쁘다’ 소리를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게 하지만, 그 바쁨조차도 내가 쳐놓은 덫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왜 자꾸 잊는지 모르겠다. 며칠전 우연히 들른 한적한 바닷가에서 반나절을 머무는 동안의 편안함을 기억하며, 휴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전화기마저 먹통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그 짧은 시간이 처음에 어찌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포기를 하고 그늘에 누워서 바라본 하늘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만 집중하며 보낸 반나절이 며칠씩 사람들 틈에서 북적거리며 보낸 휴가보다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내가 놓치 못했던 그동안의 일상에서 이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왜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내가 쳐 놓은 울타리 밖의 세상을 외면하며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재충전을 한다고 휴가를 떠날 때도, 무슨 짐을 그리 많이 꾸리게 되는지 가방 한가득 읽지도 못하고 도로 가져올 책을 싸곤 했었다. 언젠가는 휴가지에서 펼쳐든 책이 일년 전에 싸들고 와서 읽던 책으로, 책갈피를 꽂아놓은 그대로 화석처럼 멈춰진 시간을 만나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왠지 음악이라도 들려야 마음에 평화가 오는듯한 착각에 빠져 온전한 쉼에 머무르지 못하고, 여행지에서조차 뛰어다니며 구경에 집착하는 나를 만날 때면 과연 재충전이라는 게 되고 있기나 한 건지, 여행지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추스리며 가방을 풀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쉬면서도 오감을 모두 열어놓고 자신을 혹사했던 지난 나의 휴식의 방법을 반성하고 있음이다. 오늘 하루 뉴스를 안 봤다고 해서, 또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형 기기들의 사용법에 서투르다 하여 내가 삶의 낙오자가 되는 것도 아니데, 그렇게 불안해하며 쉼터에서 조차 편히 쉴 수 없었던 나를 되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교수님이 소개한 레스니스(Lessness) 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미친듯이 뭔가 나만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며 조급해 하지만,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것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나만 못해봤다’는 강박관념은 오늘날의 멀티옵션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라 한 그의 말에 뒤늦은 공감을 한다. 요즘 세상엔 선택사항이 너무 많으니 놓쳤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주변사람이나 환경도 한 몫을 거든다니 디지털 세대를 살아가는 나같은 아날로그 세대가 갖는 불안의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제 여행을 떠나도 ‘숨’에만 집중하여 보기로 결심하며 레스니스(Lessness).의 생활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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