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26·LA 다저스)이 박찬호(39)보다 낫다? 스포츠 기자로서 요즘 가장 많이 접하는 질문과 의견이 바로 이에 관한 것인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정말 성급하고 빨리 잊는다는 생각이 든다. 5년(1997~2001) 동안 75승(49패)이나 거둔 ‘코리안 특급’에 대한 기억은 벌써 사라진 모양이다.
류현진이 겨우 6차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른 시점에서 둘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난센스일 뿐만 아니라, 이는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를 통틀어 최다승(124) 투수란 기록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긴 ‘국민 영웅’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류현진의 배짱 두둑하고 화끈한 출발에 찬사를 보낸다. 자랑스러울만한 선수가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박찬호의 기록을 갈아치우기 위해서는 다저스와 6년 계약이 만기될 때까지 매년 20승씩 올려도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10승씩 올린다면 39세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던져야 한다.
보기 불안했건 아니건 간에 박찬호는 2000년 18승(10패·평균자책점 3.27) 시즌까지 작성하는 등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던 투수다. 비교는 류현진 또한 비슷한 성적을 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고, 또 류현진이 나중에 박찬호에 비교되는 성적을 남긴다면 대성공이라 하겠다.
미국에도 3년 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24·워싱턴 내셔널스)란 ‘괴물투수’가 나타났지만 “그가 놀란 라이언보다 낫다”는 식의 의견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일찌감치 둘의 커리어 스타트를 비교하는 기사를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류현진이 박찬호는 물론 일본인 히데오 노모보다 낫다는 기사까지 서둘러서 나오고 있다.
여자골프에서 13살 때부터 이름을 날렸던 미셸 위(23)나 송아리-송나리(27) 한국계 쌍둥이 자매가 박세리(35)보다 크게 되는 게 기정사실인 것처럼 떠들었던 똑같은 사람들이 아닌지 한 번 알아볼 일이다.
“Greatness is measured by time”(위대함은 시간으로 재는 것) - 여러 번 말하지만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냐는 것은 세월에 걸친 성적이 말해주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가 한두 번 ‘반짝’ 해서 ‘골프황제’가 아니고, 마이클 조단이 ‘농구황제’임을 입증해주는 것 또한 6개의 우승반지다. 또 박세리 이후 수많은 한국여자골퍼들이 LPGA 투어 대회 정상에 올랐지만 아직도 박세리의 통산 25승 기록에는 근처에 간 선수도 없기에 박세리가 대단한 것이다.
류현진의 피칭 스타일이 더 시원시원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스피드보다는 제구력을 앞세우는 투수로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는 경우가 훨씬 드물고, 또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수 없을 정도로 인터벌이 짧기 때문이다. 오래해야할수록 어려운 게 정신집중이기에 동료 수비수들과 단 매팅리 다저스 감독도 이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아마 박찬호에 대한 가장 큰 불평은 “항상 보기 불안했다”는 것이다. 인터벌이 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류현진과 다를 수밖에 없는 ‘파워피처’였다. 복싱으로 말하자면 류현진은 맞을 염려가 덜한 아웃복서인 반면 박찬호는 난타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인파이터였던 셈이다. 그리고 류현진은 이미 잘 할 만큼 잘하는 ‘완제품’으로 들여온 반면 박찬호는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투수가 아니라 다저스가 잠재력을 보고 ‘데려다 키운’ 투수라는 점이 다르다.
또 “박찬호는 한국이 메이저리그로 보낸 첫 주자로서 모든 한국인들이 어렵게 커 부잣집으로 시집 간 외동딸 보는듯한 눈으로 봤기에 항상 불안했던 것으로, 한국 팬들이 박찬호를 겪으면서 그만큼 메이저리그에 익숙해지고 세련됐기에 이제는 그만큼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차이”라는 설명도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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