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비엔나와 프라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음악과 미술, 건축과 역사, 음식과 와인을 물리도록 탐하고 즐긴 문화예술기행이었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아카데미에서 1년 넘게 서양음악을 공부했던 9명의 친구들이 함께 한 수학여행, 비슷한 눈높이와 취향을 가진 여자들이 부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였다.
모두 알다시피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와 말러가 이곳에서 작곡하고 연주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물론 누구보다 비엔나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은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였지만, 슈트라우스를 만나기 위해 비엔나를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슈테판 대성당에서 슈베르트 미사곡의 첫 음이 울려 퍼지자마자 수천가닥의 금실같은 전율이 나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그 떨림은 음악회가 끝날 때까지 발치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LA에서 온 삭막한 영혼을 달래고 또 달랬다. 황홀경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 가슴이 먹먹하여 눈물까지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카를 성당에서는 모차르트 레퀴엠을 들었고, 호프부르크 궁정교회에서는 빈 소년합창단이 연주하는 일요일 미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국립오페라극장인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감상했다.
고전적으로 완벽했던 이 오페라 공연을 이번 여행의 백미로 꼽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구스타프 말러에 심취해온 나로서는 세기말 이 오페라극장에서 10년간 음악감독으로서 지휘했던 말러의 숨과 땀과 혈이 맺힌 그 장소에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유럽의 도시에 있는 성당들에서는 매일 저녁 음악회가 열리는데 언제나 좌석이 다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연주 수준도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이런데서 듣는 바흐의 오르간 곡이나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모차르트의 알렐루야 같은 음악은 폐부와 골수를 찌르는 듯한 감동, 사람의 오관을 통째로 흔드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서양음악의 역사가 곧 교회음악의 역사이고 성당이 곧 연주장이었던 만큼 가장 자연스런 소리, 오리지널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이 온전히 전해져오는 것이다. 누구보다 음악회를 많이 쫓아다닌다고 자부해온 사람이지만 미국에선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오랜 세월 음악이 축적된 공간이 빚어내는 소리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으로도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연주장의 어쿠스틱으로 치자면 최신 테크놀러지로 지어진 디즈니 콘서트홀만이야 하겠는가. 하지만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기도, 찬양과 연주가 쌓이고 새겨진 천정, 기둥, 바닥, 창문, 벽화, 나무의자와 촛대들에 음악이 닿았다가 내게 오는 소리는 어찌나 깊고 높고 넓으며 다정하고 조화롭던지 음들이 살아서 눈과 귀, 얼굴과 피부를 어루만지고, 가슴과 머리에 파고드는 것 같았다.
빈에서 우리는 또한 미술관도 여러개 방문했고, 역사적인 건축물도 찾아다녔으며, 빈의 명물인 카페들도 빠짐없이 들러 커피와 디저트를 즐겼다. 빈은 ‘세기말 비엔나’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19세기말 음악과 미술과 문학과 건축, 그리고 프로이드의 심리학이 꽃 피운 총체적인 예술의 도시였으니, 하루 종일 걸었어도 갈 곳과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좋은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언제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1분만에 먹어치운 것처럼 허무하다. 오래 준비했으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달콤했던 순간들이 혀끝에 남은 아이스크림의 뒷맛처럼 아쉽고 모자라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