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지난 해 12월 김흥호 전 이화여대 철학교수께서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옛날이 되어버린 한 시절을 깊게 회고했다. 나의 아내가 되었지만, 교수님의 제자였던 한 여학생을 2년도 넘게 쫓아 다녔던 추억과 그 여학생에게서 얻어 읽던 사색(思索)이라는 잡지에 대한 기억이었다.
교수님은 그 잡지의 제호인 사색(思索) 이 자신과의 가장 깊은 대화 (對話)라는 뜻 이라고 쓰셨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장자의 세계관이나 불교의 여러 경전을 넘나들며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하시던 김흥호 교수님의 넉넉하던 모습이 너무도 존경스러웠다.
지난 7일에는 안병욱 교수께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회자정리 (會者定離)는 정녕 피할 수 없는 것 인가. 중고등 학교 시절, 을지로 입구 근처에 있던 흥사단 강당에 자주 강연을 들으러 갔었다. 그 중에도 안병욱 교수님의 강연은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 강연에서 안 교수님은 대화의 중요성을 명료하게 요약했다. 그 때 적었던 노트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우리 문화에는 대화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 올바른 대화를 하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후 “대화는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이며, 성공적인 민주주의 필요조건”이라고 하였다.
대화를 하려면, “마음을 열고 성의를 보여야 한다 (開心見誠),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易地思之), 열심히 들어야 한다 (傾聽), 적정한 선에서 양보하여 서로 이익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妥協)”라고 요약 하였다.
대화 없는 가정에 사랑이 있을 수 있겠는가? 대화 없는 부부는 동거인일 뿐 사랑으로 맺어진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 없다. 사회와 국가도 대화와 소통이 없으면 전체주의 국가들이 범하는 오류를 똑같이 범할 위험이 있다.
요즈음 여당과 야당이 정치보다는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정부를 폐쇄한 책임이 어떻게 의회나 행정부 한 쪽에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든 잘못은 상대에게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을 들으며, 한 평생 한 목소리로 훈계하시던 노 철학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필자만의 감상이 아닐 것 이다.
“나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존 배이너 국회의장은 모두 똑같이 정부를 폐쇄한 책임이 있다. ‘마음을 열고 성의를 보였다면’,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았다면’, ‘열심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적정한 선에서 양보하여 서로 이익을 나눌 줄 알았다면’, 정부를 폐쇄하는 극단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지도자들이 도무지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듣지 않으려 작심한 결과였다.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개심견성’이라고 칠판에 한문으로 크게 쓰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더욱 그립다. 두 교수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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