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만 고집해선 성장 한계...아시안이 하나 돼야”
▶ 카치.딘킨스 시장시절 잦은 한.흑 갈등 중재.화합 공헌도
<사진=천지훈 기자>
이민자들의 권익옹호와 미국사회와의 유대강화에 앞장 서오고 있는 마이클 림 아시안 아메리칸 자문회의 의장, 아시안 커뮤니티의 힘 조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그를 만나본다.
▲창립 31주년 아시안아메리칸 자문회의
“아시안은 유대관계가 없어 도와주고 싶어도 그 창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아시안의 권익을 옹호하고 문제발생시 보다 빠른 해결을 위한 단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택 교수를 비롯한 한인 지도자, 중국인, 일본인들이 모여서 1984년 아시안아메리칸 경찰자문회의를 발족했다.”
당시 조병창, 이문성, 유주태 등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경찰자문위원이 되었고 지역별 순찰대가 만들어지면서 경찰과의 유대강화 및 범죄예방에 힘썼고 한인커뮤니티에 사건이 생기면 경찰 본부장을 만나 문제 해결을 했다.
점차 ‘폴리스’(Polis)란 단어에 묶여 활동 범위가 더 이상 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90년대 초에 단체이름을 아시안아메리칸 자문회의(Asian American Council)로 한 뒤부터 국제적으로도 눈을 돌렸다. 중국, 일본 등과 교류하며 중국의 경우 광동시를 비롯 7~8개 도시가 뉴욕 서폭카운티와 애틀란틱 시티 등과 자매결연도시를 맺었다.
올해로 창립 31주년을 맞이하는 아시안아메리칸 자문회의 의장 마이클 림은 한인사회보다 주류사회에 더욱 이름이 나 있다. 그만큼 해온 일이 무수하다.
1980년대부터 아시안 아메리칸과 아프리칸 아메리칸 소사이어티 자문위원, 아시안 아메리칸 공화당 부회장, 아시안아메리칸 경찰자문위원회 위원장 및 설립자, 뉴욕시티 에코노믹 디벨롭먼트 디렉터, 뉴욕 퀸즈카운티 대법원 성직자 라운드 테이블 카운실 멤버 등을 지냈다. 특히 1994년~1999년 줄리아니 뉴욕시장 고위직 임명위원회 커미셔너, 2008~2011년 뉴욕 롬(Rome) 시티 시장실 산하 경제개발위원회 의장, 2009~2013년 뉴저지 애틀란틱시티 아시안아메리칸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그는 뉴욕시 아시안아메리칸 카운실 자문위원 및 설립자, 뉴욕주 라이선스카운실 멤버, 퀸즈카운티 아시안아메리칸 검사자문위 명예회장 및 설립자, 뉴욕시경 명예 멤버이며 2014년부터 롱아일랜드 낫소카운티 아시안 경제자문위원장으로서 아시안 국가 제조업체들의 낫소카운티 진출 확대, 지역 한인자영업자들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있다. 이렇게 활동범위가 넓은 그가 주류사회로 받은 상패만 백여개,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한국어 시험에 공헌
“폴리스 아카데미 교육 강사, 퀸즈 검찰청의 아시안아메리칸 이벤트, 한인밀집 플러싱 지역 경찰서에서 동양인 관습 등에 대한 강의뿐 아니라 권총강도로 희생된 한인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구치소로 가기 전 억울하게 잡혀간 한인들의 영어 통역, 케네디공항에서 들어오다가 불법취업 전력으로 잡혀간 한인들 문제도 해결했다.”
마이클 림은 한인들의 생업과 직결된 일도 해왔다. 바로 20년 전부터 지금도 몸담고 있는 뉴욕주 면허국 교육고문으로서 한 일이다. 그는 이·미용 관련 네일, 메이크업과 스킨케어 등 한인여성들이 대다수 종사하고 있는 각종 라이선스 한국말 시험을 만들었다. 한국말 시험이 시행되면서 많은 한인가정이 쉽게 이민의 터를 닦았다. 운송협회 운전 라이선스 한국말 시험도 시행했다.
또한 매년 봄 맨하탄 제비츠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IBS대회 고문으로 수년간 일하면서 한인 참가자들을 독려하기도 했고 아시안 뷰티콘테스트 심사위원도 지냈다.
마이클 림 이름은 한국에까지 알려져 김포공항 입국서류뿐 아니라 한국 경찰과 치안국 교육 강사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전천후 활동이 이어졌다.
▲화려한 인맥
매년 아시안아메리칸 자문회의 창립행사 참석인원이 보통 500~600명, 대다수가 백인, 중국인 등의 타인종인데다 뉴욕시경, 검찰, 국토안보부, FBI 고위층이 모이는 막강한 자리다. 한번은 창립기념파티에 모인 판사만 46명이었을 정도로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데 이는 저절로 쌓여지지 않았다.
마이클 림은 홍콩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했고 1958년 미국에 잠시 왔으나 너무 힘들어서 도로 일본으로 돌아가 1958~1962년 동경 릿쿄대학과 게이오 법과대학에서 국제법, 형법, 민법, 노동법, 국제협약법 등을 공부했다.
1962년~63년 피츠버그의 듀크대학으로 유학 와 국제법, 노동법, 형법, 회계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50년이상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기반이 되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에 들어가 1년 다녔는데 학비와 생활비가 엄청 났다. 일본어 교육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감당이 안돼 학교를 그만 두고 워싱턴 D.C,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들어갔다.
1963~1970년 행정부에서 일한 다음 개인회사를 차렸다.” 그는 메뉴팩추어 텍스타일 회사, 하이 테크놀러지 무역회사를 경영했고 1997~2000년에는 파지 재생회사를 운영했다. 현재도 중공업 머신 국제무역에 종사하면서 이 모든 수익금은 아시안아메리칸 자문회의 활동경비로 들어갔다.
비즈니스를 하는 틈틈이 2002년에는 뉴욕시티 폴리스 아카데미, 2003년에는 뉴욕 FBI 시민아카데미에서 교육받으면서 미국의 모든 법 체제를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미약한 커뮤니티 안타까워
“한인끼리 모여 한국말 하고 소주 마시며 남 욕이나 하면 안된다. 초창기에 끼리끼리 친목이 흑인 커뮤니티의 반발을 샀다. 우리 동네에서 장사하면서 여기 살지도 않고 이웃을 돕지도 않고 돈만 가져간다는 불만이 브루클린 흑인 시위도 발생하게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뉴욕일원의 흑인밀집지역에서 한인상인과 흑인 고객간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나고 79년 브루클린 처치애비뉴에서 흑인들의 조직적인 시위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불거졌다.
이때 마이클 림은 한인지도자와 흑인지도자들이 모이는 한흑소사이어티 그룹을 통해 서로 이해시키고 화합을 하게 했으며 실제로 카치 시장 시절, 한흑 갈등을 많이 풀어놓았다.
다시 1990년 플랫 부쉬 한인청과상 레드 애플에서 일어난 한흑 갈등이 장기간 시위로 번져가자 1990년 9월 18일 뉴욕시청 앞에 한인 1만여명이 모여 인종화합 평화대회를 열었다. 이때 뉴욕 최초의 흑인시장 데이빗 딘킨스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마이클 림은 딘킨스 시장을 연단으로 세웠고 시위를 중단하라는 법원 명령을 시행하도록 결단을 내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1년이상 된 브루클린 흑인시위는 종식됐다.
▲아시안이 하나가 돼야
미국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 이종원은 1960년대 플러싱 지역에서 소아과를 시작, 수많은 한인 어린이들에게 무료건강보험으로 예방접종 및 주사를 놓아준 참된 의료인이다. 마이클 림과 슬하에 2남을 두었는데 큰아들 로봇과 작은아들 로렌스 모두 치과의사이고 손자 하나, 손녀 셋이 있다.
마이클 림은 매일 아침 7시면 일어나 롱아일랜드 로즐린 집에서 프레시메도우 소재 사무실에 나간다. “오래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수술을 한 이후 골프를 접었고 매일 일하는 낙으로 산다.”는 그는 그는 필요하면 경찰, 검찰, 정치인들을 동원, 한인들을 위해 독불장군처럼 일해 왔지만 한인들로부터 ‘특별히 한 게 뭐 있어’, ‘사기꾼이다’ 하는 질시도 많이 받았다.
“정말 어렵다. 자기가 못한다고 욕을 해서는 안된다. 한인사회에는 홍길동이 많다, 단체도 너무 많다. 한인회에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지도 못한다. 한인커뮤니티만 고집하다가는 크게 확장되지 못한다.” 현재 아시안아메리칸 자문회의에는 50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한인은 5~6명, 중국인이 많고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안이 골고루 모였다.
“동양인들이 뭉쳐서 하나가 되어 미국의 정계, 경제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권익을 찾고 미국에서 인정받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 주류사회에서 중국인들의 파워는 크다. 한인사회도 초창기에 비해 조금 움직이고 있으나 아직 미약하다. 힘을 모아야 한다.”
30년이상을 부지런히 뛰었지만 여전히 모자란, 마이클 림이 가장 바라는 것은 ‘뭉쳐진 아시안의 힘’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