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탐정 소설, 탐정 드라마가 내 여가시간의 한 몫을 차지했었다. 요즘도 드라마를 보고 싶을 때면 범죄 수사극에 자주 마음이 끌린다.
세월 따라 드라마 보는 방법도 점점 ‘스마트’ 해졌구나 싶다. 더 이상 방영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을 지키거나 녹화를 할 필요가 없다. 멤버로 가입한 유료 웹사이트에서 언제라도 그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볼 수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동안 알아낸 내 정보로 내 취향을 예측, 내 입맛에 맞을 것 같은 리스트까지 추천해준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구나 싶을 때도 있다.
지난 주말이었다. 심심해서 추천 드라마 리스트를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 타이틀이 너무나 반갑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형사 콜롬보’ 였다. 한때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범죄수사 드라마다. 당장 처음 에피소드부터 보기 시작했다.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형사 콜롬보. 되살아나는 그 시절 기억들과 함께 참으로 반가웠다. 후줄근한 레인코트와 낡은 자동차, 어수룩한 듯한 몸짓으로 잡담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결국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집요하고 날카로운 추리력을 발휘한다. 여전하다.
잠시 지난 추억에 잠기다, 최근 수사물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점이 내게는 가장 크게 다가왔다.
최근 미드 범죄 수사극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크리미널 마인드 (Criminal minds)’로 연쇄살인범을 잡는 연방수사국 행동 분석팀 (FBI Behavioral Analysis Unit)의 프로파일러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사건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상태나 성향 등을 파악,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낸다.
범죄 심리와 행동분석의 도구로 첨단 디지털 장비가 등장한다. 용의자들을 좁혀가는 수사과정이 완전 스릴 만점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이지만 말로만 듣던 빅 데이터의 힘에 절로 흥분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모든 정보가 낱낱이 노출되는 상황 즉 사생활 침해와 보안문제에 내 자신이 대입되면서 섬뜩해진다. 결코 가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핸드폰에 장착되어있는 위치추적 장치에 관한 뉴스가 떴다. 이번엔 구글 관련 장치라 했다. 혹시나 해서 내 핸드폰 세팅을 확인하고 이 장치를 막는 정보를 페이스북에 올려 널리 공유했다. 보안에 관한 정보를 접할 때마다 애를 써보기는 하지만 유리상자 안에 뭔가를 숨겨보려는 노력처럼 허탈하기만 하다.
컴퓨터 웹, 핸드폰, 페이스북 … 디지털 도구들이 매일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들으며 나갈 준비를 한다. 일터에서 컴퓨터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서도 집에 오면 다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다. 드라마를 보거나 페이스북으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소식을 나누고 온라인 아이 쇼핑을 하기도 한다.
책도 이제는 읽어주는 기능까지 있는 전자책을 선호해서 핸드폰으로 책을 보고 듣고 한다. ‘스마트’한 환경의 대두로 그 힘을 맘껏 활용하고 즐기면서도 내 일상의 흔적들이 여기 저기 고스란히 남는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환호와 회의. 어쩌면 이 현상은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양면성이지 싶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이들에 환호하기도 하고 실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 힘이 대단할수록 양면성의 양상도 파격적일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해 온 많은 도구들과의 세월이 보여주듯 결국은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칫 도구에게 먹히는 세상이 오지 않도록 하려면 도구 보다 사람들이 ‘스마트’해야 할 테고 말이다.
스마트한 세상을 이야기하다 보니 아직도 아날로그 세상에 사시는 엄마가 생각난다. 나의 영원한 멘토, 엄마랑 어머니날에 아날로스 방식으로 통화하며 어려운 한 세상을 잘 살아내신 노하우 중 한 수라도 배워봐야겠다. 삶의 지혜에 있어서는 아날로그나 디지털이나 통하는 것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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