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실 안에서 담당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픔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별 장식도, 창문도 없는 하얀 벽 진찰실 안에서 적막하게 오래 기다리고 있을 때는 더 가중 된다.
걱정한 것처럼 중병으로 확진되는 경우도 생긴고 완치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 환자에게 중병의 진단을 알려주는 의사로서는 치료의 한계에 마음이 무거워 진다.
어느 사상가는 권한다. 환자 자신이 연금술사가 되어 쇳덩어리를 황금으로 바꾸듯이,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세상만사가 존재의 본질이라는 깨달음으로 이루도록 명상을 하라고 한다.
어려운 철학적인 충고다. 깨달음만으로는 완전히 행복해질 수는 없겠지만 두려움과 고통이 우리 내면의 고요와 평화로 변화된다면,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평화’같은 마음이 된다면 몸과 마음의 아픔이 완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종교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평범한 우리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가 병이나 고치지 웬 도사 같은 충고를 하나 싶겠지만 생리적인 병의 완화가 의술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 내장을 지배하는 신경 세계의 자율신경계에는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있다. 불안, 근심, 걱정, 두려움, 질투, 분노 등으로 교감 신경이 자극되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소화 불량이 오며 식욕도 감소되어 몸 전체의 기능이 떨어진다. 그러면 질병에 대한 저항성도 감소된다.
이에 반해 평온한 마음, 욕심 없이 비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부교감 신경에 자극을 주어 좋은 수면을 갖게 해주며, 근육의 이완으로 아픔이 경감되고 육체의 건강한 활력과 질병의 저항성을 강화시킨다.
아픔이 찾아 왔을 때 깨달음에 이른 예는 우리 주위에도 많았다. 아프지 않았다면 드리지 못했을 기도들이 있었고, 아프지 않았을 때는 듣지 못했던 말씀들이 있었고, 아프지 않았을 때엔 가깝게 느껴지지도, 우러러 보여 지지도 않았던 거룩한 성전이 보였다. 아프지 않았다면, 인간이 부족한 존재라는 겸손을 몰랐을 것이다.
일전에 가까운 환자의 주치의로서 시내 암 전문의 병원 진찰실에서 같이 기다린 적이 있었다. 적막한 기다림 중에 벽에 걸린 액자의 글을 읽게 되었다.
“집 정원이 떠오른다면, 떨어진 낙엽을 헤아리지 말고 꽃들의 수많은 가지 수를 세어보세요.
당신이 지금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면, 구름 끼었던 시절을 생각 마시고 좋았던 황금시절들 만을 되새겨보세요.
당신이 지금 어두운 밤을 연상하고 있다면 ,깜깜한 암흑을 생각하지 마시고 밤하늘의 영롱하게 빛나던 별빛들만을 떠올리세요.
지금 당신의 나이가 많아졌음을 헤아려 들려 마시고, 긴 세월 동안 쌓인 정다운 친구들의 숫자가 많음과 그들의 얼굴들을 헤아려보세요.”나와 함께 액자의 글을 읽던 환자의 굳었던 표정이 밝아지면서 마음에 평안이 깃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캄캄한 긴 터널 속에서 저 끝의 밝은 빛을 보는 그런 감정일 것이다.
나도 환자들의 불안한 마음에 안도와 평온을 줄 수 있도록 진찰실에 잔잔한 음악을 흐르게 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가슴에 다가올 수 있는 글을 벽에 걸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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