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깨끗한 물을 담다. 정병(淨甁) 청자로 만든 목이 긴 병이 있다. 기다란 모자를 연상시키는 윗부분을 지나 늘씬한 목을 따라 내려가면 아담하게 벌어진 어깨가 나타난다. 동그란 어깨 한 쪽에는 단단하게 생긴 주구(注口)가 달려있다. 단정하게 생긴 몸통으로 이어진 형태는 속에 물과 같은 액체를 담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정병(淨甁)의 모습이다. 정병은 본래 깨끗한 물을 담는 물병이었다. 오늘날처럼 정화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식수로 사용하는 정수에 대한 관리가 엄격했다. 특히 물 사정이 좋지 않았던 인도에서는 깨끗한 물을 오염되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 때 사용되었던 용기가 정병이었다. 정병의 긴 목은 벌레나 이물질 등이 쉽게 병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했고, 물을 따라내기 위한 주구가 어깨에 붙음으로서 몸통은 최대한 많은 정수를 보관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깨끗한 식수를 보관하는데 사용했던 정병은 수행하는 승려가 지니고 다녀야 할 필 수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깨끗한 물을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구(供養具)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불교의 전래와 함께 한반도에 소개되었다.
불교가 널리 성행했던 고려시대에는 유사한 형태의 정병이 금속기 혹은 도자기로 제작되었다. 현재까지 꽤 많은 수의 유물이 남아있는 고려시대 정병에 대해서는 12세기 초에 중국의 사신 서긍이 남긴 기록이 흥미롭다. 1123년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은 당시 여행에서 보고들었던 고려의 풍물을 『선화봉사고려도경』에 기록하였는데, 이 중에는 정병에 대한 서술이 남아있다. 그는 ‘(고려에서는 정병을) 존귀한 사람과 나라의 관원과 관사, 민가에서 모두 다 사용하는데 다만 물을 담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적어도 12세기 고려에서는 정병이 물병으로 일반화 되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이어서 ‘(정병의) 높이는 1척 2촌, 배의 지름은 4촌, 용량은 3승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를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높이는 약 36 cm(약 14 inch), 몸통 지름은 12cm(약 5 inch), 용량은 1.8l(약0.5gal) 정도로 꽤 큰 크기였음을 알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에도 서너점의 고려시대 정병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특히 <청자상감 갈대문 정병>은 높이 25.6cm, 몸통지름 13.3cm로 서긍이 묘사했던 정병과 크기는 좀 다르지만, 전면에 가는 선으로 새긴 갈대장식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깨끗한 물을 담아 오래도록 잘 보관하기 위해 주구에 꼭 맞는 뚜껑까지 함께 제작한 이 정병은 뚜껑과 몸통에 각각 작은 구멍이 두 개씩 뚫려 있다. 뚜껑을 분실하지 않으면서 기능적으로 열고닫을 수 있도록 가는 끈 등을 통과시켜 연결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맑고 깨끗한 물을 담는 정병에 섬세한 상감기법으로 조용히 바람에 나부끼는 물가 풍경을 묘사한 장식이 유독 돋보인다.
* 이 유물은 호놀룰루미술관 특별전 <화려함과 단아함,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한국 도자 명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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