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국수를 무너뜨리다
붉은 잇몸을 드러내며 수줍게 웃는 여인이 있다. 해맑은 미소 속에 중국 여인 특유의 당당한 눈빛이 엿보인다. 겉보기에는 화장기 하나 없는 평범한 이웃집 아줌마다. 그러나 누가 이 여인을 ‘반상의 마녀’라고 하며 ‘철의 여인’이라고 했던가.
2000년, 4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의 41회 국수전 결승전에서 조훈현 국수를 물리치고 중국의 여류기사가 한국의 국수 타이틀을 거머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 바둑계의 전대미문의 대사건이 터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 9단 루이나이웨이(芮乃衛)가 한국기원에 객원기사로 등록하고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설마하니 여성이 아무리 바둑을 잘 둔다고 한들 한국 최고의 타이틀인 국수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모든 프로기사들의 선입관을 일순간에 엎어버린 것이다.
최고 타이틀인 국수전에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며 끼워준 시합에서 그녀는 보란 듯이 내로라하는 한국 유명기사들을 단칼에 무찌르며 난전 속에서 홀로 여신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훈현 국수가 누군가. 당대 무림의 최고수다. 전 세계 바둑황제로 칭함을 받는 조 9단이 아니던가. 그를 상대로 도전기 2승1패의 전적으로 승전고를 울린 것이다.
전 세계 바둑계를 떠도는 별
중국 상하이에서 1963년에 태어난 그녀는 10살 때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다. 배운지 몇 년도 안 되어 바둑천재소녀라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1986년에는 전 중국 여류선수권전에 출전하게 되고 4년 연속으로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으로써는 최초로 9단으로 승단하게 되고 국가대표팀으로 발탁이 되었다. 최초의 국가대항전인 중일슈퍼대항전에서는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일본의 여류기사들에게 전승을 세우는 기록을 세우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일본 바둑원정 중에 사소한 사건이 터진다. 젊은 여성이었던 그녀는 동료 국가 대표팀 남자선수였던 장주주 9단(현 남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국제바둑대회 시합기간 중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남녀선수 간에는 접촉하지 못하는 규정을 어기게 된 것이다.
당시 중국은 엄연한 사회주의국가로 그녀는 관료주의의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되고 국가대표에서 제명되면서 하루아침에 국제를 떠도는 별이 된다. 그래서 처음 당도한 곳은 바둑유학생으로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바둑계는 냉정했다. 일본기원측은 자국 여성바둑 보호차원에서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바둑대회 출전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그녀의 정처 없는 방랑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겨우 어린이 바둑교실을 열어 생활비를 벌어 쓰던 그녀를 알아보고 제자로 받아준 사람은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기성 오청원, 바둑계의 큰 별 오청원 대국수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은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거기서 다시 바둑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위대한 스승 밑에서 그녀는 피나는 수련을 쌓게 된다.
장주주 9단과의 재회와 결혼
국가대표팀의 일본 원정기간 중 일어난 사건으로 사랑하는 연인과도 헤어져야만 했던 그녀는
몇 년 뒤 국제대회인 응씨배 참가차 미국에서 건너온 연인 장주주(張鑄久) 9단을 다시 만나게 된다. 장 9단은 천안문 사건에 연루되어 미국으로 망명 중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국땅 일본에서 두 연인은 전격적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편인 장주주를 따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게 되며 그곳에서 꿈같은 세월을 보내게 되고 잠시 바둑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바둑은 나의 전부이며 아무리 지옥 같은 곳이라도 바둑을 둘 수만 있으면 그곳이 내게는 천국이라고 하던 그녀에게 다시 행운이 찾아온다.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프로 도박사로 일하던 차민수 4단을 만나게 된 것이다. 차민수는 미국 바둑계에서는 거물이며 한국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바둑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수준 높은 바둑을 선보이고 미국바둑협회와 공동으로 바둑대회를 열며 동양의 바둑 보급에 앞장서고 있었다.
이런 차민수와 한국의 조훈현 국수는 막역한 동료이자 친구사이였다. 그리고 조훈현 국수와는 오청원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동문 사숙지간이다. 이런저런 사연과 인연으로 루이와 장주주 부부는 조훈현 9단의 천거로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초대되어 한국으로 입국하게 된다.
한국 여류바둑의 제패
한국에서의 그녀의 바둑여정은 순풍에 돛을 달아준 격이 되었다. 당대의 한국 여류바둑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천하무적의 보검을 빼들어 닥치는 대로 여류바둑대회를 제압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도 막지 못하는 그녀의 독주가 시작된 것이다.
3년 연속 전관왕의 여류대회 타이틀을 걸머쥐면서 남자들의 대회인 최고 기전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한국기원의 입장에서는 외국 국적의 그녀가 한국의 모든 여류 타이틀을 석권하는 걸 보면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입장이 되었다. 또한 일부기사들은 이러한 현실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건이 생겼다. 한국 낭자기사들이 분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 선두에 나선 한국의 여류기사가 조혜연 8단. 도저히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던 한국의 소녀기사 조 8단이 타도 루이 9단을 외치는 깃발을 높이 세웠다. 마침내 여류국수전에서 조혜연 8단에게 무너지게 된다. 그로써 그녀는 한국 여류기사들의 실력과 위상을 높여주기 위해 한국에 왔다면서 한국기원측은 여류기사들의 장래를 위한 좋은 결정이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12년간의 한국 체류기간의 업적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2011년 그녀는 21년의, 떠도는 별로써의 생활을 마감하고 조국인 중국으로 귀환하였다. 12년 한국 체류기간동안 통산 타이틀획득 29회의 대기록을 세운 후였다. 상하이 중국기원의 요청으로 남편과 함께 영구귀국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중국의 국가대표팀으로 복귀되었다. 아직도 살아있는 바둑여신이 되어서다.
choi15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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