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타 싱어송라이터 엘턴 존(68)의 피아노 독주는 마치 거대한 파도가 치는 소리를 연상케 했다. 4분가량 피아노로만 사운드 폭풍을 선사한 후 대표곡 '로켓맨'을 밴드 연주와 함께 본격적으로 쏘아 올리자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27일 밤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펼쳐진 '현대카드 큐레이티드 엘튼 존'은 작은 공연장에 쓴 대서사시였다. 존은 500명을 상대로 한 소극장 공연에서도 바다와 우주를 종횡무진하는 오디세이아 음악세계를 구현했다.
팝 거장은 '로켓맨'이라는 별명답게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변함 없는 위엄을 자랑하며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그가 소극장 규모의 무대에 오른 것은 데뷔 초를 제외하면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직전 내한공연인 2012년 11월에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무대에 올랐다. 당시 8,000여명이 운집했다.
스탠딩에다 관객은 16분의 1가량 줄었지만, 그만큼 밀도가 촘촘했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는 세련된 공간임에도 천장 등이 뚫려 있어 사운드를 최상으로 들려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를 직접 데려오는 등 공간을 손보고, 탄탄한 밴드 멤버를 대동한 존은 이 공간을 다시 보게끔 만들었다.
존의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의 영롱한 소리와 데이비 존스턴의 그르렁거리는 기타, 매트 비조넷의 듬직한 베이스가 맞딱드리며 로큰롤 사운드의 경쾌함을 맛보여 준 찰나가 절정이었다. 존을 든든히 도운 킴 블라드(키보드), 공연장의 노출된 구조물까지 스틱으로 연주하는 존 마혼(퍼커션), 묵묵히 모든 사운드를 지원사격한 나이젤 올슨(드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피아노맨' 빌리 조엘(66)에 상응하는 영국의 '피아노맨'인 존의 여전한 피아노 테크닉을 보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었다. 1970년 미국의 작은 클럽인 '트루바두르'에서 현지 데뷔 무대를 꾸밀 때의 총명함이 여전히 번뜩거리는 듯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색안경을 끼고 여러 색깔로 반짝이는 옷을 입고 나온 존은 100분간 18곡을 들려줬다. 하나 같이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다.
'더 비치 이스 블랙' '베니 & 더 제츠'로 포문을 연 그는 영화배우 겸 가수 메릴린 먼로(1926~1962)에게 바친 곡이었다가 다이애나(1961~1997)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도 사용한 '캔들 인 더 윈드(Candle In The Wind)'에서 중후함이 멋들어지게 깃든 음색을 보여줬다. 예전처럼 고음에서 부드럽게 길게 빼지는 못해도, 여전히 쩌렁쩌렁했다.
품격 있는 발라드 '레본(Levon)'을 부를 때는 여유와 관록이 묻어났다. 존의 또 다른 대표곡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는 500명이 합창할 수밖에 없는 명곡이었다.
막판에는 신나는 로큰롤 파티가 벌어졌고, 존과 관객들이 연신 "새터데이"를 외친 '새터데이 나이츠 올라이트 포 파이팅'까지 흥겨움이 이어졌다. 흥은 앙코르까지 계속됐다.
홍키통키 느낌이 밴 곡으로 1972년 존에게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의 영예를 안긴 '크로커다일 록(Crocodile Rock)'을 노래할 때 울려퍼진 "나나나나나~"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귓가에 감돌았다.
여전히 화려한 매너를 보여준 존을 바로 코 앞에서 본 소극장 공연의 청중은 분명 행운이었다. 예매에 성공했다는 특권 의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전설로 인한 또 다른 추억의 땔감을 쌓았다는 행복감.
이로써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 내한공연은 두 명의 영국 경(sir)이 나눠 책임졌다.
지난 5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73)의 첫 내한공연이 폭우도 식히지 못할 압도적인 열기를 풍경화로 보여줬다면, 존의 무대는 얼굴 표정 하나하나에 깃든 음악의 역사를 목도한 세밀한 초상화였다.
소규모 공연장에서 진행된만큼 입장 시 안전요원들이 금속탐지대를 사용하는 등 다른 내한공연보다 보안이 철저했다. 전날에는 윤종신, 김수로, 윤하 등 연예인과 일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존의 프라이빗 콘서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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