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하락을 개탄하는 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투표는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손쉬운 행위가 아니다. 제대로 하겠다면 더욱 더 그렇다. 현명한 투표를 하려면 누구를 찍을지 우선 후보들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떤 이력의 인물인지, 그리고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무조건 마음이 꽂히는 후보가 있다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후보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선거 당일 투표장으로 나가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부자재투표와 우편투표 같은 사전 투표방식들이 있지만 이 또한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선거일이 공휴일로 지정된다면 그나마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업과 학업 때문에 투표소로 발걸음 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경제학자인 앤서니 다운스는 일찍이 “정치에 대해서는 무식할수록 합리적”이라는 학설을 내놓았다. 이른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가설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투표를 위해 앞서 언급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돈을 쥐게 되거나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니 정치에 관심을 쏟고 투표를 하는 게 경제 논리로는 그리 합리적인 행동은 아니라는 말이다.
얼핏 궤변처럼 들리는 주장이지만 실제로 이런 이유로 수많은 유권자들은 정치적 행위를 회피한다. 여기에 정치 혐오가 더해지면 투표율은 한층 더 뚝 떨어진다. 정치 말고도 관심을 쏟을 것들이 무궁무진한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상태다.
그런데 금년 들어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동력이 사회적 변화를 향한 순수한 열망인지, 아니면 현 상황에 대한 분노인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젊은이들이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 대선 예선에서 18~29세 사이 젊은 유권자 투표율은 지난 2008년 오바마 출마 때보다도 높다. 그 중심에는 버니 샌더스가 있다. 샌더스가 불러일으킨 열망에 이끌려 젊은이들이 투표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오는 13일 실시되는 총선에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밝힌 20대가 72%에 달했다. 이는 4년 전 조사 때보다 무려 15.1%포인트가 높아진 수치다. 대단히 높은 수치임에는 분명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이런 수치에는 거품이 끼어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투표장에 나갈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4년 전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투표의사를 밝힌 것만은 분명 고무적이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아직 때가 덜 묻었다. 금년 대선 투표에 참여한 미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에서 이들은 ‘정직성’ ‘냉철함’ ‘진정성’ 등 세 가지를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요즘 정치에서는 갈수록 찾아보기 힘든 자질들이다.
물갈이를 내세우며 계파싸움에만 골몰하는 한국 정치권의 후진적 총선공천을 보면서 유권자들이 정말 제대로 한 번 물갈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정치참여는 더욱 절실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권자들이 투표를 외면하면서 정치시장은 완전 셀러스 마켓이 돼 버렸다. 셀러인 정치인들이 바이어인 유권자들을 두려워 않게 되면서 온갖 기만과 바가지가 판치고 있다.
‘합리적 무지’가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이런 무지와 무관심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허접스러운 정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무관심은 결코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올 봄 한국 총선과 가을 미국 대선을 통해 젊은이들이 이뤄내는 정치혁명을 더욱 보고 싶은 것이다.
<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