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진실한 것만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바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하루는 새벽에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이 피곤해지면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컴퓨터를 켠다. 리포트 쓰는 일에 쫓기지 않는 한, 한국에서 보내온 뉴스들을 훑어본다. 정치에 관한 것은 별로 흥미가 없어 얼른 지운다. 보편타당성이 전혀 없는 글로 물어뜯는 지역감정 싸움은 진저리가 나다 지쳐서 슬퍼지기까지 한다. 나의 하루가 때 묻을까 두려워하면서 빨리 삭제한다. 읽을 필요가 있는 것만 남겼다가 맛있는 음식을 아끼듯 야금야금 읽어간다.
제목이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였다. 나는 유학생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유학생 가족으로 살던 시절은 힘들었지만 가장 풋풋한 시절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연이어 그 시절 우리들의 추억들이 청포도 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등장하고 뭉근하게 녹아있던 기억들이 싱싱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받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어느 한국 유학생 이야기였다. 장학금으로 아파트 월세 내고 책을 사고 나면 식비가 모자랐다. 아르바이트로 식비를 버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점심을 굶기로 했다한다.
당시 그 학교 교수들은 주로 집에서 점심을 가지고 와서 휴게실에서 먹었는데 하루는 그가 점심시간에 휴게실에 두었던 무엇인가를 가지러 갔었단다. 마침 그곳에서 점심을 들고 있던 담당교수가 그 학생을 불렀다. 자신은 나이가 들어 체중조절을 해야 하는데 부인이 너무 큰 샌드위치를 싸주어서 다 먹을 수는 없고 버리자니 부인의 정성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불편하니 자기를 도와서 좀 나누어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로부터 그 학생은 자주 그 교수의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었다.
세월이 흘러서 유학생은 드디어 학위를 받게 되었다. 학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교수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하게 되었는데 점심을 나누어 먹던 그 교수만이 홀로였다. 그 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별렀는데, 좀 섭섭하여 ‘사모님은 왜 불참이시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오래 전에 하늘나라에 갔다’고 하더란다.
순간 유학생의 가슴은 얼마나 시렸을까. 콧날이 시큰거렸을 것이다. 교수는 손수 크게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굶어가며 공부하는 유학생에게 점심을 먹여주기 위해 연극을 한 셈이다.
상대방의 자존감을 배려하는 마음,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아끼고 돕는 마음, 훈훈하면서도 올곧은 인간의 향기가 나를 일깨웠다. 이 사연을 읽는 순간 내 눈에는 시야가 흐려질 만큼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순간적으로 내 몸이 거뜬해짐을 느꼈다. 그때의 나를 누가 보았다면 볼에 홍조를 띄고 있다고 했을 것이다. 그 무엇에 대하여 환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다는 것에 지고한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커피 맛도 더 좋은 것 같았다.
그 짤막한 이야기가 이토록 나에게 감동을 주다니. 인간은 결코 악하지 않고 신뢰 받을 자격이 있는 동물이다. 산다는 것이 삭막하고 건조하다 할지라도 귀한 보석 같이 값진 마음 씀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준다.
오늘 아침은 마음의 부피와 질감이 왜 이토록 크고 부드러워지는 것일까.
어둠이 희석해오는 새벽의 신선한 맛, 그 시원적인 의미를, 그리고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승화되어가는 순간의 엄숙성이 바로 희망이라고 조용히 말하리라.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결핍도 서로 다독여 줌으로써 보완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 같은 것을 느끼는 아침이었다. 이 사연은 사소한 것이 결코 아니다. 깊이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인간정신이다. 나에게 감명을 주는 따끈한 이야기에 이아침은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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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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