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시는 중국 할머니인 오랜 환자 한분이 아들과 같이 오피스로 들어오셨다.
따로 사는 아들이 찾아 갔을 때 어머니는 괴로워하며 하염없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고 했다. 이유 중 하나는 유일하게 의지가 되고, 마음에 평안을 주던 현금을 집에서 잃어버린 때문이었다. 쓰지는 않아도 항상 주머니에, 아니, 가슴에 품고 사셨다고 한다. 노년 들어 믿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더욱이 요즈음은 20년 전 세상 떠난 남편이 새삼 그리워 몸이 힘들 때마다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단다. 할머님은 울먹이면서 남편이 어디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살아있을 때는 그가 항상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찾아도 곁에 없다는 것이 설움으로 복받치어 울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어야하고 힘들 때는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일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 문호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이 할머님은 항상 옆에 있었던 남편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힘들 때, 늘 곁에 있었던 사람이 현재는 없는 것이다. 바로 제일 소중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물론 슬하에 장성하여 출가를 한 건실한 아들, 딸들은 있지만, 그들은 바쁘고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할머님은 지난 20년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 전날 차이나타운에서 방금 맞추어온 뜨끈뜨끈한 오리구이 요리를 한 쟁반씩 오피스로 가져다주곤 했다. 어느 해인가 “왜 매년 오리요리를 가지고 오시느냐”고 물었더니 20년 전 내 환자로서 신부전증으로 돌아가신 남편이 “내 죽은 후에도 크리스마스에는 꼭 오리구이를 닥터 최에게 갖다 주라”고 해서 남편의 유언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지난 몇 년 간은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가져 오셨는데 이제는 노쇠하여 교통이 복잡한 크리스마스이브엔 차이나타운까지 운전이 힘들어 하루 일찍 다녀와 배달한다고 했다. 20년 동안 한결같이 남편의 유언을 따르는 그녀의 신실한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었다.
오늘 진찰 후 안정제와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의 내면에는 외로움, 소외라는 고독의 감정이 깊숙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해변이나 산속에 혼자 있을 때,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나가면 사라진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느낄 때의 외로움은 치유할 방법이 없다. 이것이 진정한 고독이 아닐까? “누구 한사람도 알아주는 이 없는 인파 속을 헤집고 나갈 때 무섭고 쓸쓸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고 이탈리아 기행에서 문호 괴테가 말했다.
오피스를 나서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며칠 밤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좀 더 관심을 가져드리라고. 관심과 도움의 눈길, 아니, 손길을 주어야 된다고 했다. 어머님이 잃어버린 돈을 못 찾으면 형제들이 돈을 모아 어머님 주머니에 넣어 드리는 것이 어떠냐고 권해 보았다.
우리 오피스를 포함하여 이웃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주위에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전해져 그 감정이 가슴에 녹아들어 따스함이 되고 삶에 의욕을 줄 수도 있다. 누군가 내 옆에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의 포장이 더 튼튼해지지 않을까?이 할머님에게도 좋은 이웃과 서로의 관심, 좋은 친구, 많은 대화가 고독을 치유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소외된 현대 사회에서 생기는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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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청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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