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에 가장 긴 여행이었다. 한 달 반을 집을 비웠으니 전엔 생각해 볼 수도 없는 호사였다. 서울을 기점으로 중국까지 드나들며 한국의 동서를 헤매고 왔다. 낯설기도 했고, 좋아서 들뜨기도 했다. 나의 인연들이 살고 있는 내 땅이며 그리던 곳이다.
나의 뿌리가 되는 그 나라는 저만큼 앞서 달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간 나의 두리번거림은 너무나 당연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일이 없는 나는 버스나 지하철 타는 일은 깜깜 절벽이니 지하에서 이리가고 저리 가는 일이야 있을 수 있는 방황이지만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생소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한국은 여러모로 질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횡단보도에 정지신호가 켜지고 사람이 건너갈 때는 초록 신호판에 몇 초가 남아 있음을 알리는 숫자가 적힌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문이 닫히고 열림은 물론 층의 숫자까지 귀가 아플 정도로 일일이 일러준다.
경주에서 열린 <세계 한글작가 대회>의 용의주도한 준비성에 나는 놀랐다. 거의 완벽하리만큼 세세했고 물 샐 틈 없는 짜임이었다. 참가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대학 초년생인 듯한 청년들이 20~30미터 간격으로 서서 안내를 하며 먼 나라에서 온 손님들에게 불편이 없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처음만이 아니고 폐회하는 순간까지 시종 일관하고 있었다. 전에는 한국에서 듣기 어렵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용어들도 자주 들려왔다. 나는 한국의 매사를 놀라워하면서 정확한 눈으로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삼청동 거리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3쯤 되어 보이는 청순한 소녀들이 길에 즐비했다. 학교를 가지 않고 웬 행사인가 했더니 중국학생들이 여행 중에 한복을 착용하고 한국의 멋을 즐기는 중이란다. 한복 대여점의 기발한 아이디어에도 감탄했고 그 옷을 즐기고 있는 애들도 귀여웠다. 그러나 그 옷은 내가 어려서 입던 한복이 아니어서 얼마나 섭섭하던지.
한복의 유연하고 멋스러운 붕어소매의 곡선은 물론 깃과 섶의 곡선은 사라지고 총대 같은 서구식 소매가 되어버린 데 대한 섭섭함에 짠한 가슴을 달래야 했다. 우리 고전의 미를 버린 개량한복은 중국 옷 같은 기분이 들어서 거부감이 심했다.
고향집에 가보았다. 문간채나 행랑채는 철거한지 오래고 겨우 살려둔 본채에는 낯모르는 사 람이 집을 지켜주며 살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어둠 속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잃었다. 두세번 오가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찾은 집 앞에서 네 개의 열쇠를 들고 대문 열쇠와 방 열쇠를 구별 못해 궂은비를 맞으며 뼛속까지 습해진 고향의 진미는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비 나리는 고향의 밤은 슬픔인 듯 절절함이 있는 것이라고 젖어드는 옷이 의미를 불어넣어 주었다. 향수어린 아픔이기도 했다.
직립한 건물의 화려한 야경보다는 한국의 내부를 훑어보고 싶었고 아름다워서 가슴이 저린 이야기를 밤새워 쓰고 싶었다. 질긴 인연을 잘라내지 말고 살며시 끈을 끌어당기며 따라가서 살피고 무언가를 주워보고 싶었다.
눈부시게 번창하는 한국의 한가운데서 KTX를 타니 남의 나라 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행 KTX가 질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속도에 질리면서 오늘날은 스피드 시대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토록 스피드는 중요한 것일까? 유유하게 살수는 없는 것 일까? 새벽 닭의 길고 쉰 울음소리가 급속으로 달리는 KTX와 겹쳐 느껴짐은 웬일일까?삼청동 전통찻집 발코니에서 차를 마시며 옛 시들을 외우던 순간은 이번 여행의 빛나는 시간이었다. 모처럼의 고국 방문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들을 갖게 해주었다. 우리 속에 잠자고 있는 소녀, 그리고 빛나는 이상, 혁혁한 청춘이 우르르 함께 동시다발로 일어서고 있었다. 애잔하게 나이 먹어가는 여인들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땅에서 태어나 넓은 세상을 날아다니며 이편저편을 비교할 행운을 누리며 형안으로 한국을 읽고 있는 존재이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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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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