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크게 빛난 해였다. 그해 3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파가니니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양인모가 우승했고, 5월에는 벨기에에서 열린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임지영이 우승했으며, 10월에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조성진이 우승했다.
파가니니, 퀸엘리자베스, 쇼팽 콩쿠르는 모두 음악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이고, 세 사람은 당시 20~21세의 신예들로서 해당 콩쿠르 역사상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이들의 결선 실황연주는 유튜브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데, 아직 솜털이 남아있는 앳된 아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고 아름답고 깊이 있게 연주하는지, 보는 내내 계속 탄성이 터져 나오는 명연주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금 의아하고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유독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만 쏟아지는 찬사와 언론의 집중 조명이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한국은 “음악계의 노벨상을 탔다”며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었다. 그 열광은 지금까지 이어져 조성진은 가는 곳마다 인터뷰기사가 끝도 없이 나오고 있다. 바로 지난달에도 한국서 열린 리사이틀 티켓이 예매 몇 분만에 3,000석이 매진됐다며 아이돌그룹을 넘어서는 스타라는 기사가 인터넷을 달궜다.
조성진이 작년 11월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이곳의 소카 퍼포밍 아츠 센터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티켓은 일찌감치 다 팔렸고, 연주장은 한인들로 가득 찼다. 인터미션 때 열린 음반 사인회는 연예인 사인회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그를 통해 한국 클래식 애호가들의 저변이 확대됐다니 그건 정말 듣던 중 반가운 뉴스다.
그에 비해 양인모와 임지영의 우승 소식은 너무 조용하고 간단하게 지나가 버렸다. 바이올린 세계에서 대단한 쾌거였던 두 사람의 우승이 조성진 신드롬에 묻혀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마틸데 왕비가 직접 시상할 정도로 벨기에의 국가적 행사이며, 우승자는 1708년에 제작된 명기를 4년간 임대받는 부상도 주어진다. 이 콩쿠르에서 기악 부문 한국인 우승은 임지영이 유일하다.
파가니니 콩쿠르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버킷리스트에 올려놓는 꿈의 대회다. ‘악마’로 불릴 정도의 고난도 기교를 구사했던 전설적 연주자 니콜로 파가니니를 기념해 1954년 창설된 이 대회는 매년 열리다가 2002년부터 격년제로 열렸으며, 2015년 콩쿠르는 5년 만에 개최된 대회였다. 여기에서 양인모의 우승은 9년 만에 나온 1위였고, 거기에다 청중상, 현대작품 연주상, 그리고 최연소 결선 진출자에게 주어지는 닥터 엔리코 코스타 특별상까지 함께 수상해 큰 화제가 됐었다.(이 대회 우승자 중 1996년 김수빈이 있는데 미국 국적의 한인 2세다)
나는 조성진에게도 열광했지만 더 놀랐던 건 양인모의 결선 연주 동영상이었다. 40분이 넘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그가 활을 들어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하면 그대로 빨려 들어가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 지극히 화려하고 테크닉이 어렵기로 악명 높은 파가니니 콘첼토를 이렇게 쉽고 수려하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또 있었는지, 계속 놀라워하며 지켜본 연주였다. 양인모가 연주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협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이 계속 함께 보였는데 넋을 놓고 그의 연주를 바라보는 표정들에서 그의 비범한 실력이 그대로 읽혀졌다.
그 양인모가 다음주 LA에 온다. 2013년부터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양인모는 2월25일 오후 8시 샌타모니카의 브로드 스테이지에서 다니엘 석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드림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파가니니와는 대조적으로 중후하고 견실하며 열정적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가 어떻게 소화해서 들려줄지 정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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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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