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그대를 들여다 본다.” 철학자 니체가 한 이 유명한 말은 실은 인간 존재와 세상의 윤리가 가진 한계와 모순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인데, 요즘에는 주로 호러 영화나 심리 스릴러 영화 맨 앞에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잡는데 쓰이곤 한다. “네가 귀신을 보려고 하면, 귀신도 너를 보기 시작한다” 랄까.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오싹한 매력에 이끌려 무서운 이야기를 찾는 것과는 반대로, 실제로 자기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최선을 다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우리를 깊은 자아 성찰로 이끌기 위해 고안된 여러 심리검사 방법들은 “오늘의 운세”나 “재미로 보는 나의 이상형” 정도로 전락해 버린다.
그렇게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예전에 꽤 이름있고 돈도 제법 많이 모았다는 한 연예인이 “TV를 켜놓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라고 하는 인터뷰를 들었다. TV 소리 속에 자기 내면의 불안과 걱정, 생각거리들을 묻어 버리지 않으면 꼬리를 문 생각에 쫓겨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연(深淵) 이란 원래 깊고 고요한 물 속을 일컫는 말인데, 그의 심연은 꽤나 시끄러운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심연이 있다. 먼저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자기 반성의 목소리. 사는 것은 어쩌면 매일 타락해 가는 것과 같아서, 어느새 먼지 입은 양심과 윤리가 마음을 두드릴 때, 우리는 문간에 선 양심을 붙잡아 입을 틀어막고 싶어진다. “다 그러고 사는데 뭐”라고 위안하며.
또는 세상에 부딪쳐 좌절된 어린 날의 희망과 기대. 또는 마음 깊이 눌러둔 분노와 슬픔. 세상이 나에게 이렇게 상처 입혔다고, 나는 피해자라고 소리지르고 문득 돌아보니 어느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사람이 된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심연에서 돌아서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으려 한다.
심연 따위, 자아 성찰 따위, 두뇌 뒷 구석 어딘가에 밀어두고 없는 듯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왠걸, 내가 가장 높이 뛰고 싶을 때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그 심연에 묻어둔 것들이다. 뒤로 밀려난 나의 양심과 슬픔과 분노와 걱정은 어느새 나의 가정을 해치고 직장생활을 망가뜨리고 내 가슴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심연을 들여다 보라. 묻어둔 양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라. 꿈을 잃어버린 내면의 아이를 돌아보라. 불안과 걱정을 들여다보고 그 합리성을 따져보라.
어떻게 심연과 만날까. 우선은 다른 누군가와 만날 때 처럼 시간과 장소를 잡는다. 내가 제일 편하고 한가한 시간,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장소가 심연과 마주하기 좋은 곳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나 향초를 켜놓아도 좋겠다. 앉아 있어도 좋고 걸어도 좋고 누워도 좋다. 혹 편안한 김에 잠이 들어버린다면, ‘아, 내게 잠이 필요했구나’ 하고 편하게 받아들이시라.
또 기껏 마음을 잡고 내면을 들여다보려는데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부들부들 떨며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거든, 자책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면 된다. 잊지 마시길. 나의 심연은 나의 것이다. 한낱 신문 사설에서 본 적도 없는 상담사가 뭐라고 떠들든,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내 마음이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권리이니, 언제든 마음이 편할 때 다시 시도하는 것도 괜찮다.
드디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걱정이나 양심이나 혹은 아직 어리고 올곧은 나를 만나거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 잘 기억하기 위해 노트에 끄적여 보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해서 나의 심연과 화해할 수 있으면 좋고, 혹 남은 이야기가 있거든 다음을 기약하라.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 일상이 되고 마침내는 나의 활력소가 되도록.
(703)76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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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상담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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