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어회를 먹고 싶어요.”
1996년 9월 잠수함을 타고 강릉 일대에 침투했다가 생포된 북한 무장공비 이광수가 남한에서 처음으로 한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뜬금없었는지 간첩과 교신하기 위한 암호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수사 결과 “남한 인민들은 못살기 때문에 고급 음식인 광어회는 먹어보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해 해본 말”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광수가 만약 1970년대에 생포돼 같은 말을 했다면 그때는 남한 사정을 제대로 짚은 것이었다. 광어는 1980년대 양식에 성공한 후 국민 횟감이 됐지만 그전까지 보통 사람은 한 점 맛보기도 힘든 최고급 음식이었다.
광어는 가자미목 넙칫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서는 ‘넙치 접’자를 써 ‘접어’로 소개하고 있으며 ‘본초강목’에는 나라를 상징하는 물고기로 기록돼 있다. 주로 바다 밑바닥에 살며 생김새가 넓적한 것이 특징이다.
횟집의 수조를 보면 생김새가 넓적해 비슷한 물고기가 많다. 크게 보면 다 같은 형제들로 도다리·가자미·납새미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좌광우도’라는 말은 광어와 도다리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광어는 눈이 왼쪽에 붙어 있고 도다리는 오른쪽에 붙어 있다.
언젠가부터 동네 횟집에 보면 ‘광어 한 마리 9,900원’이라는 광고판이 붙어 있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영 맛이 없다. 광어는 무조건 덩치가 클수록 맛있는데 9,900원짜리 광어는 대략 500g 정도 되는 작은 녀석이어서 맛을 내지 못한다.
크기로 치면 알래스카 대광어를 따라갈 수 없다. 알래스카에서는 배를 타고 나가 낚시로 잡는데 사람 키보다 더 큰 광어가 수두룩하다. 이제껏 잡힌 광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996년 포획된 208㎏짜리다.
광어 가격이 요즘 바닥을 모르게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낸 보고서를 보면 제주 양식광어의 산지 가격은 지난달 ㎏당 8,869원으로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23.6%나 내렸다. 생산원가가 1만원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이러다 양식광어는 사라지고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자연산만 남을 수도 있겠다.
광어 가격이 이렇게 급락한 이유는 대일 수출 감소도 있지만 한국 내 소비 부진이 가장 크다. 우리 바다에 사는 광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데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노르웨이산 연어와 일본산 방어를 더 찾는다.
지조 없는 입맛을 혼내든 새로 물산장려운동을 하든 뭔가 수를 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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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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