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땅에서부터 올라오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나뭇잎이 연주하는 파도소리에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면 천지만물에 가을이 가득하다.
올해를 돌아보니 분주함을 하나씩 가지치기 하면서 조금 더 천천히, 단순하게 살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서 마음이 좋다. 이런 저런 활동으로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올해부터는 ‘의식적으로’ 나의 내면과 가족들의 정서적 필요에 집중하며, 그동안 소홀했던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조금씩 쌓아왔다.
신뢰가 쌓여가면서 가족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고, 그럴 때 다른 가족은 공격받는다는 느낌에 ‘내가 뭘?’이라고 방어하는 대신 ‘아!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었다. 마음의 불편함을 견뎌주는 안전한 곳이 가정임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가족이 함께 성장하고 소통하는 과정 중에 큰 도움이 된 훈련 중 하나가 ‘자신의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바라봄으로써 문제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연습’이다.
예전에는 산책이나 하이킹을 할 때 팟캐스트나 유튜브 강의를 듣곤 했는데, 요즘은 30분 정도는 의식적으로 아무 것도 듣지 않는다. 하늘과 나무 등 주변의 자연을 가만히 바라보고, 가끔 멈춰 서서 주변의 소리에 귀를 열고 공기 냄새를 맡거나 천천히 날숨과 들숨을 반복하며 오감을 통한 ‘지금, 여기(Here & Now)’를 느껴본다.
그러면 어느새 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 자신과 온전히 하나됨을 경험하며 마음이 풍성해지던 그때로 돌아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자연을 바라보는 습관은 의식적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떨어져서 바라보는 연습이 되었다.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문제나 힘든 상황 속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을 볼 수 없어서 문제 해결의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 ‘나의 생각과 그로인해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작업을 전문용어로 ‘메타 인지(meta-cognition)’와 ‘메타 감정(meta-emotion)’이라고 부른다.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면 상담사는 문제에 휘둘리는 사람이 문제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문제를 겪으며 머리에 떠오르는 자동적-많은 경우 부정적-생각과 왜곡된 생각이 무엇인지, 잘못된 신념과 가치관은 없는지, 지금 올라오는 감정들은 무엇인지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처음 ‘바라보기’를 접한 것은 10여년 전 상담공부 첫 수업과제를 통해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로 가서 한 시간동안 사람들의 외모와 행동, 표정과 몸짓 등을 멀리서 관찰하고 서술하는 거였다. 그것은 상담 중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 표정과 비언어적 행동을 관찰하는 훈련이었고, 더 나아가 보여지는 외모나 행동 너머의 생각과 감정이나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편견 없이 관찰하는 더 깊은 훈련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상담 인턴들에게 ‘상담은 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말해주곤 한다.
어느 계절보다 움직임과 변화 많은 가을은 가만히 바라보기 좋은 계절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알아챈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내가 통제권을 갖는다는 말이다. 그때 비로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무의식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적 대응이나 분노 폭발로 일을 그르치고 관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한다.
세상의 많은 다른 일들처럼 이 역시 지속적인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데, 바쁘고 분주한 스케줄 속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겨울을 준비하며 미련 없이 몸을 가볍게 만드는 나무처럼, 이 가을에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삶의 가지치기를 해보면 좋겠다. 4monica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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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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