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교회를 다니는 학교선배와 결혼하여 아무 가족, 친지도 없는 미국에 처음 올 때는 남편의 박사과정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솔트레이크에서 낳은 아이 둘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곳의 긴 겨울마다 자주 아팠고 때로는 힘든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좀 더 시간이 나면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지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질학에서 신학대학원으로 남편의 진로가 바뀌고 우리는 한국이 아닌 밀밸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남편은 목회학 과정에 있었고 아이들은 나란히 아침에 학교에 가면 오후 3시에 돌아오니 처음으로 저만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수업만 갔다가 오면 너무 기뻐하며 수업에서 배운 것을 얘기하다가 저도 같이 공부를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학생 배우자에게 주는 격려 차원의 장학금도 도움이 되었고 학교 내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걸어서 수업에도 가고 채플시간에도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아이들 학교에서의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공부와 주말 교회 사역으로 바빴지만 기쁘고 평온한 시간들을 지냈습니다.
담임목회자가 된 남편과 함께 3년의 학교 아파트 생활을 마치고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알바니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생활을 도와야 했고 그것도 목회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교회에 일이 있을 때마다 양해를 구하면 빠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한국 분들이 하는 사업체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돕는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의 지역 봉사기관에서 한어 영어를 하는 소셜워커를 구한다는 한 웹사이트의 구인 광고를 우연히 보고 먼저 기도를 했습니다. 저의 마음이 노인들을 돕고 싶어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기모치라는 일본기관에서 우리 한인 노인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게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저는 기도 후에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통과해서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30여년 전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저는 잊어버리고 포기했지만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내 속에 소원을 두시고 가장 알맞은 때에 이루어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현희(기모치 소셜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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