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아이들 둘을 모두 대학으로 떠나보낸 후 이제 부모로서 해야 할 큰 숙제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잠시 쉬던 부엌일 등 가사노동이 늘지만, 일단 한번 집을 떠났던 아이들은 어느덧 손님이 되어 빨래나 설거지, 라이드 등이 이미 내 손을 떠나 예전보다 수월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선배들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왔다 갈 때마다 실감한다.
밴 가득 짐을 싣고 떠났던 아이들이 방학 때 돌아오고, 개학 때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겉과 속이 함께 영글어가는 모습에서 성장이 엿보여 감사하다. 대학 3학년인 막내는 ‘심적으로 내가 아직 멀리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며 한 시간 거리의 대학교를 가서 자주 집에 온다.
그런데, 지난 봄 방학 때 집에 와서 저녁을 먹던 녀석이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엄마, 머리에서 자꾸 어떤 소리가 들려.” “엥? 이건 또 무슨 말? 진짜 머리나 귀에서 환청이 들린다는 거야?”
심리상담사 엄마의 과잉 반응에 아이는 피식 웃으며 “그게 아니고 마음에서 ‘이렇게 산다는 게 무슨 의미지?’란 생각이 자꾸 올라와서 우울하고 허무해져’라고 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사춘기와 대학생 아이들에게 듣는 말을 내 아이가 하고 있었다. 아이는 10학년이 지나고 난 후 늦게 사춘기 문턱에 들어서더니 지금도 여전히 정체성을 찾는 사춘기의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나는 누구며 왜 살고 있지’란 삶의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종종 허무와 혼란을 느낀다고 했다. 그 아이가 대화 중에 던진 질문이 내 머리를 심하게 때렸다.
“엄마 아빠한테 화내거나 불평하는 게 아니라 난 너무 궁금해. 어떻게 ‘사랑해’ 말을 하면서 애들을 내버려두고 시간을 같이 안 보내지?”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초등학교까지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나 아이가 6학년이 될 때 나는 상담 대학원 공부를 시작해 일과 공부를 병행했고, 남편도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 주말엔 운동을 하며 애들과 보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애들이 사춘기가 되어서 친구가 중요하니 부모랑 시간 보내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 라는 어림짐작으로 쿨한 부모 시늉을 하며 애들과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었다. 아이가 “사랑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 아닌가?” 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랬구나. 너무 미안하다. 엄마는 네가 말도 잘 안하고 혼자 있고 싶어해서 존중한다고 그냥 내버려둔 거 같아.” “덕분에 독립적인 아이가 된 거 같아요. 아직은 내가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기도 하다가,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마음을 열어 진심을 보여준 아이가 고마왔고, 그 말에 ‘엄마도 엄청 애썼다’며 섭섭함을 쏟아 내거나 화 내지 않고, 진심으로 들어주고 사과할 수 있었던, 그동안 공부하며 일하며 쌓아온 나의 내공이 감사했다. 이 일을 계기로 봄방학 일주일 동안 아이와 소통하며 마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추억을 함께 엮어가는 것’이란 평범하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내게 다시 일깨워준 아이. 자녀의 말에 부모가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그들이 우리의 거울이며 우리의 스승인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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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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