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23일 아침,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 선착 장에서 배를 기다리다가 한국인이 쏜 3발의 총탄 중 2발을 맞고 이 틀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보도된 것으로 알 려져 있으나 그후 감쪽같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남자의 이름은 학교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영상으로도 한번도 들어본 적 이 없었다. 한 미국 저자는 “코믹-오페라 암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전명운이 손에 묶어 놓은 총이 불발되며 몸싸움이 시작됐다. 뒤에 약속없이 나타난 절친 장인환이 쏜 총에 맞아 스티븐스가 쓰러지고 주위에 서있다가 혼비백산한 백인들이 “일본놈들 목을 매라!”라고 소리를 질렀다. 백인들은 그 당시 동양인을 다 “잽스”라고 비하해서 불렀는데 황당한 상황에 그냥 입에서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그 와 중에 누군가 이 동양인들을 인파에서 구해내 체포했다.
스티븐스는 일본에게 위탁을 받고, 한국에서 고종과 그의 정부를 마음껏 주무르는 권력을 얻은 사람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가장 수 치스러운 시절, 스티븐스는 미국 신문에 “일본은 한국과 한국인을, 미국이 필리핀에게 하듯이 하는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한국처 럼 미개하고 엉망인 나라는 일본이 손을 봐줘야 한다며 조미수호통 상조약을 배신한 미국을 확실하게 세상에 알리고 다닌 사람이다. 그 리고 미국 전국을 다니면서 일본의 식민지 착취를 사업설명회 하듯 이 정당화하고 다닐 계획이었다.
열사들이 스티븐스가 묵고 있는 페어몬트 호텔로 몰려가 그만 입 을 다물 것을 사정했지만 오히려 스티븐스는 호통을 치며 멸시했다. 참다 못한 장인환, 전명운 열사는 마지막 선택을 했던 것이다. 미국 언론은 암살에 성공한 장인환에게 사형을 면해 주었고, 실패한 전명 운에게 감옥살이도 면해 주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그 들을“ 한국의 애국자”라고 썼고, 스티븐스를 일컬어“ 미국 독재자”라 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즈는 돈을 받고 남의 나라를 팔아넘기는 사람 을 처단한 거사에 동정표를 던졌다. 스티븐스 저격사건으로 독립운 동가들은 더욱 힘을 얻었고 의열투쟁은 독립 때까지 계속되었다. 미 국 땅에 들어와서 백인을 암살했다는 것을 어떻게 포장을 해도 미 국 사람들이 좋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이 역사에서 영원히 지 우고 싶은 사람,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엘렌 홍 (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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