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엄마”가 비상하는 그날을 위하여
▶ 김미라/버클리 문학회원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나의 “아들 엄마”.
예순여섯살 엄마인 나에게는 서른여덟살 금쪽 같은 아들이 있다.
ICU (Intensive care unit) 중환자 실! 8년전 이 곳에서 나의 둘째 아들은 돌연 ‘아들 엄마’가 되었다.
“아들 엄마!” 이름 만으로도 ‘와락’ 눈물이 난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 수술을 했다. 아들은 엄마가 위중한 뇌 수술후 혼수 상태에 빠져 삶과 죽음 갈림길에 있었던 그 시간, 그저 망연자실 ‘제발~ 제발~ 살아만 주세요, 우리 엄마!’ 기도를 했다.
빡빡 깍은 머리, 주렁 주렁 늘어진 닝겔 병들, 온 몸에 꽂혀있는 주사 바늘들, 알 수 없는 기계들의 쉼없는 움직임과 입에 씌워진 산소 마스크가 엄마가 살아 있음을 알려 줄 뿐 아들이 할 수 있는건 오직 기도와 기다림 뿐이었다. ‘엄마, 제발~ 제발 살아만 주세요.’ 빌고 또 빌면서.
혼수 상태 나흘 막 지나 다섯째 되던 날, 기적같이 엄마가 깨어 났다. 밤낮으로 간절했을 아들의 울부짖음에 어렴풋이 엄마의 눈에는 애초로운 당신의 아들이 담겨져 있었다.
바로 그날 아들은 “아들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살아 났다는 기쁨도 잠시, 엄마의 긴 머리는 오간데 없이 까까머리에 대소변도 못 가리고 정신마저 혼미하여 이름만 겨우 기억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아들은 알아 봤으나 날짜도 이곳이 어디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꾸 헛소리만 했으며 설상 가상으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반신불수가 된 엄마. 그래도 아들과 엄마는 반쪽을 잃은 것 보다 살아 났다는 것에 감사했고 틀림없이 생과 사에서 살아 났듯이 그 까짓 반신불구는 함께라면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 자신 했었다.
어느덧 병원 생활 두달 만에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드디어 엄마는 ‘아들 엄마’ 의 보호 속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스스로 옷 입고 벗고부터 왼손으로 먹고 쓰고 틈날때 마다 서고 걷기등, 한동안 ‘아들 엄마’는 엄마를 먹이고 입히며 때로는 업고 함께 넘어지면서 오직 엄마의 재활을 위해 고군분투 했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걷고 쓰고 '여성의 창'에 아들과 함께 할수 있다. 요즈음 아들엄마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이른 새벽 직장 가기 전에 아픈 엄마 몸 상태를 살피고 하루 먹을 약과 주의사항이나 그날 할 일을 일일이 적어 엄마 머리맡에 놓아 주면서 항상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변함없이 안부를 살피고는 출근길에 오른다. 퇴근길에는 전화를 해 필요한게 없는지 물으면서 지금 퇴근함을 알린다.
특별히 내가 제일 미안한 것은 날마다 해 주는 맛사지이다. 8년을 저녁 잠자리 들기전 한 두시간씩 ‘아들엄마’ 본인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엄마의 아픈 팔 다리를 주무르고 맛사지 기계를 이용해 몸을 깨워준다. 힘들다고 말려 봐도 소용 없이 오히려 지금은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우리 둘의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은 “꼭! 다시 걷게 해주세요” 우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엄마이며 함께 자식이 된다.
오늘 3월의 눈부신 햇살이 2024년를 활짝 열고 있다. ‘아들 엄마’여, 이 눈부신 3월의 햇살처럼 38세 금쪽같은 나의 아들로만 힘껏 비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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