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브로드웨이에서 본 뮤지컬은 ‘리얼 우먼 해브 커브스(Real Women Have Curves) ’인데 LA 지역 남미계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라틴 여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이다.
뮤지컬은 멕시코 이민 2세 아나의 꿈과 현실을 그린 성장 스토리다. 먼지가 날려 고급드레스를 망칠까봐 한여름에 선풍기도 틀지 못하고 일하는 미싱 봉제사들은 철문을 쾅쾅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바짝 긴장한다. 누군지 확인하고서야 문을 열어준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LA 시내의 불법체류자를 잡아들인 날 밤, 공장의 불을 모두 끄고 죽은 듯이 침잠한다.
엄마 카르멘은 컬럼비아 대학 입학허가서를 받은 18세 아나에게 자신은 13살부터 일해서 몸이 아프다면서 지금은 그녀가 봉제공장에서 일할 차례라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민 온 것 아니냐고 하자 지금 생계가 더 중요하다. 우리 가족은 헤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몸매를 가꾸어 남자나 낚으라는 엄마에게 ’난 살 빼기 싫어, 내겐 체중 말고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한 아나는 봉제공장에서 다림질을 하면서 그곳에서 18달러에 납품한 드레스가 뉴욕 블루밍데일에서 600달러에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동력이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현실을 보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된 아나. 마침내 아버지의 격려로 뉴욕으로 떠나는데 엄마는 커튼 틈으로 몰래 딸이 떠나는 것을 본다.
이 뮤지컬은 1987년 여름, LA 보일하이츠가 배경이다. 38년 전 이야기지만 그 세월동안 미국은 불법체류자에게 어떤 나라가 되었나? 그 당시와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 그 답이다.
미국의 1987년 불법체류자 정책은 특정요건을 충족하는 불체자들에게 사면을 제공했다. 1982년 1월1일 이전부터 미국에 거주한 이들에게 일정기간 경제활동을 한 다음 체류자격을 주었다.
이후 연평균 6만 명에게 합법 체류를 부여했으나 9.11테러 이후 이민법 강화로 힘들어졌다.
지난 6월6일 오전, LA 다운타운에서 전격 시행된 국토안보부와 이민세관단속국의 이민자 단속작전은 충격이었다.
남미 출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에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있었고 한인 운영 의류업체도 타깃이 되었다.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잡혀가는 것을 본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 방위군과 해병대가 들어왔다. ‘질서회복, 불법이민자 추방’, ‘LA를 이민자 침공으로부터 해방하자’는 명목이었다.
14일에는 미 전역 2,000여 곳에서 ‘노 킹스(No Kings)’ 반트럼프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렸고 뉴욕시민 5만 명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동안 미 행정부는 체류는 불허, 노동을 허락하는 이중적 잣대로 불법이민을 통제해 왔다. 건설업, 농장, 농축산업, 호텔, 식당, 소매업종 곳곳에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인구의 노령화로 젊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험한 노동을 하지 않는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일손 공백을 청소년 노동으로 메우는 아동노동법 개정도 논의되고 있다. 14세부터 야간 근무를 할 수 있게 한다니, 저렴한 노동력을 위해 저소득층 아이들을 사지로 몰고있다.
이민 단속이 강화되자 뉴욕 한인사회도 비상이다. 뉴저지 네일업소가 구인난으로 폐업하고 식당 등은 추방 위협으로 히스패닉 근로자가 일하러 나오지 않는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너희가 못사는 것은 이민자 때문’이라며 저소득층 백인을 공략했고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2기 행정부를 또다시 지지했다. 그래서 ‘불법체류자를 강력단속하여 미국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빌미가 이번에도 통하고 있다.
아시안 얼굴을 한 우리는 어딜 가다가 불시에 불체자 단속을 당할 수 있다. 이민자 권익단체는 24시간 핫라인 강화운영, 위급상황시 대처법을 제공하고 있다. 또 영주권자·시민권자 한인들도 신분증을 갖고 다닐 것을 권한다.
미국 수정헌법 4조는 불법압수나 수색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법원이 발행한 영장 없이는 압수수색이나 체포는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하, 수상한 시절이다. 그냥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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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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