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드높은 가을이 막 시작되는 10월 초 토요일이었다. 골프치러 나가는 평생의 동반자를 배웅한 후, 파란 하늘이 너무 좋아 문을 연 채로 서 있었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나폴거리며 왔다갔다 앉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어머 나비야, 앞 마당에 꽃도 안 피어있는데 어떻게 왔어?” 말을 걸며 내년에는 꽃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 앞 정원에 나비가 잠시 쉬어갈 꽃 한송이 없다는 것, 꽃을 주로 그리는 나의 반성의 순간이었다.
전에는 딸들이 학교 갔다 오면 꽃이 있어야 한다며, 내 동반자 짝이 앞마당 가득 하얀색, 핑크색, 붉은 색의 제라니움 등 꽃을 많이 심었었다. 봄에 꽃을 심어 놓으면 초가을까지 흐드러지게 피어있곤 했다.
얼마나 예쁜지 집을 나서다 말고, 되돌아와 사진도 찍으며 “너 참 예쁘다.” 꽃들에게 말도 걸곤 했었다.
그러나 딸들도 다 커 자기 갈 길 찾아 집을 떠나갔고, 우리 부부도 나이가 들어가며 젊을 때의 열정이 조금 식어 요 몇년 사이 꽃을 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매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던 크리스마스트리도 덜 화려하고, 가을날 문 앞에 놓았던 탐스런 핼로윈 호박도 없어진지 오래다.
며칠 전에는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한무리의 화려하고 우아하게 피어있던 하얀 아네모네를 만났다. 이름만 들었지 처음 보는 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 그 모습을 한참 빠져들다 왔다. 나는 그동안 그림 그린다며 사진도 많이 찍어 왔다. 또 예쁜 꽃을 보면 꽃말을 꼭 찾아본다. 하얀 아네모네의 꽃말은 ‘사랑, 희망, 기대, 진정성’ 이라고 한다. 꽃말처럼 희망과 사랑을 가슴에 가득 담아 돌아왔다.
공원에서 이제 막 조금씩 단풍이 들려고 색이 조금씩 바뀌는 나무들도 보고 왔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꽃동산 공원에 비해 초록색 나무만 있고, 황량히 비어있는 마당을 보며, 마음 어딘가가 허전했다.
요즘 집에 들어갈 때마다, 꽃이 없는 빈 마당을 보며 발걸음이 잠시 멈추어진다. 무디어진 내 감각을 알아차리지 못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침에 잠깐 몇초 왔다가 머물지 못하고 그냥 가버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오늘 하루종일 마음에 남았다. 굳어져가려고 하던 나의 감성을 일깨워 주고 간 나비.
‘나비야 나비야, 하얀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래를 불러 본다. 내년에는 앞 마당에 색색의 예쁜 꽃을 꼭 심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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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두란노 문학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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