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경북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은 5개 시군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영덕읍 석리와 노물리에 걸쳐 있는 해발 180m의 야트막한 천지산(千地山)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에 최근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희망의 원천은 ‘원전’이다. 이달 26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영덕군청 신재생에너지팀을 필두로 지역사회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사실 영덕에 원전은 눈물과 기대가 교차하는 ‘애증의 이름’이다. 시곗바늘을 돌려보면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석리·노물리·매정리 일대 324만 ㎡를 원전 부지로 확정했다. 지역 이미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산 이름을 딴 ‘천지원전’으로 명명했다. 계획대로라면 1400㎿급 1호기는 올해 상업운전을 시작하고 2호기는 내년쯤 가동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2017년 6월 ‘탈원전’ 기치를 든 문재인 정부에 의해 천지원전은 한순간에 백지화됐다. 기대에 부풀었던 지역민들의 실망은 컸다. 수년간 예정지로 묶여 재산권 행사가 봉쇄됐던 토지 소유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군은 이미 받은 원전 선정 지원금 380억 원을 반납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3년간 행정소송까지 벌였으나 결국 패소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조만간 신규 원전 부지 공모에 나선다고 한다. 이른바 ‘동해안 원전 벨트’ 지방자치단체들이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절벽 끝에서 거액의 지원금과 고용 창출, 지방 세수 확대는 거부하기 어려운 생존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새 원전은 숱한 행정 절차와 공사를 거쳐 빨라야 2037년에나 완공된다. 이념에 매몰된 탈원전 정책에 기인한 ‘잃어버린 10년’은 되돌릴 길이 없다.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가 정치적 외풍에 쓸려 표류하는 사이 지역민들이 감내해야 했던 손실과 박탈감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천지산에 다시 움트는 희망의 싹이 이번만큼은 정치적 잣대에 꺾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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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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