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를 입양한 후 이름을 베어(곰)라고 지어주었다. 어렸지만 얼굴이 곰을 닮았고 듬직한 모습이 곰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베어는 무척 순하였고 몇 달이 못 되어 덩치도 꽤 크게 자랐다. 베어와 15년을 함께 지나면서 쌓은 정은 깊었다. 어느 날부터 베어는 몸을 일으키기를 힘들어하고 자기 집에서 나오는 것을 어려워했다. 보기에 안쓰러웠다. 차츰 숨소리조차 약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베어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불렀다. 평소와 다르게 그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있었고 겨우 몸을 일으켜 그의 따뜻한 몸을 내 가슴에 기대었다. 그러고는 펄썩 주저앉았다. 스르르 눈을 감은 후 다시 뜨지 못했다. 베어를 마지막 보내는 순간이었다.
베어가 떠난 집은 허전했다. 그가 자리하던 곳은 더 넓어 보였다. 비록 짐승과 맺은 정이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문득문득 베어가 생각나곤 한다. 표정을 보고, 눈길을 보고 감정을 나누던 베어에게 깊은 정이 들었나 보다. 그가 말할 수 있었다면 마지막 남긴 말은 무엇이었을까?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의 부인 올윈 그린(Olwyn Green) 여사의 유언이 생각났다. 그의 남편 찰스 그린(Charles Green) 중령은 그의 부인과 어린 딸을 남겨두고 1950년 9월 28일 호주 육군 제3대대 지휘관으로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다. 치열했던 연천 전투와 박천 전투 그리고 정주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1950년 11월 1일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다. 후에 그의 유해는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부인 올윈은 외동딸을 기르며 평생 교직 생활을 하고 은퇴하였다. 전사한 남편에 대한 그의 애절한 사랑을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라는 책에 실었다. 아흔을 넘긴 올윈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유해를 남편의 묘역에 안장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녀는 남편이 전사한 후 69년이 되던 2019년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96세였다.
당시 유행했던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바로 부산에 안장되지는 못했지만 4년 후에 그의 뜻에 따라서 호주 대사관 주관으로 찰스 그린 중령이 묻힌 부산의 유엔 기념 공원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다. 참혹했던 한국 전쟁과 그 긴 세월도 찰리 부부의 애틋한 정을 가르지는 못했다. 올윈은 남편에 대한 애정을 일생 간직하고 살았다. 그녀는 6·25전쟁 당시 호주군 최대 격전지였던 가평의 지형과 6·25전쟁 중 전사한 호주 파병 전사자의 이름을 손바느질로 누벼 작품(퀼트)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이 작품을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 전시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유엔군 전사자들의 희생을 기리기로 하였다.
이 세상에는 가슴깊이 정을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적지 않다. 사별한 배우자를 그리며 살아가는 분, 하직한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그들이다. 멀리 이민 간 딸이 보고 싶어 위독한 중에도 닷새 동안이나 숨을 거두지 못한 채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내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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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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