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하도리원호흥경도(春夏桃梨園豪興景圖)
▶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 국립중앙박물관
복사꽃과 오얏꽃 봄 동산 밝혀주고
다정한 벗들이 하나둘 찾아오네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우리는 덧없는 세월 속의 나그네
부평(浮萍) 같은 인생에 마음 둘 곳 없다 하나
그 속엔 즐거움도 찾아보면 많다네
함께 모여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이니
흐르는 시간도 우릴 위해 멈추었네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 1696-1763), 김덕하(金德夏, 1722-1772) 부자가 합작으로 1744년에 그린 이 그림은 180cm 길이의 두루마리 중 일부인데, 봄과 여름날의 전원생활을 그린 것으로 중국풍, 조선의 산수화, 풍속화가 혼합되어 재미있다. 첫 번째 그림은 두 선비가 연회가 열리는 복숭아꽃 만발한 집을 찾아가는 장면, 중간 그림은 이백의 시 <춘야원도리원서>를 그린 그림의 한 장면으로 선비들이 정자에 모여 시를 짓고 흥겹게 먹고 즐기는 모습이다. 세 번째 그림은 노선비가 집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집 마당에는 선비의 상징인 학 한 마리가 선비를 기다리고 있다.
김두량은 영조, 정조 시대의 도화서원으로 공재 윤두서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영조는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아꼈다. 그의 호 남리(南里)는 영조가 하사했는데, 이는 김두량이 왕의 마음을 읽는 예술적 동반자였음을 의미한다. 영조는 그에게 종신토록 급록을 주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그를 총애했다. 그는 인물, 개, 풍속, 산수를 잘 그렸는데, 그의 풍속도 중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의 일상이 그려진 것이 많으며 <추동전원행렵승회도(秋冬田園行獵勝會圖)>라는 두루마리 그림이 유명하다.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은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즉, ‘봄날 밤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부천지자만물지역려 광음자백대지과객)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 같은
세월은 백대를 지나가는 나그네
而浮生若夢 爲歡幾何(이부생약몽 위환기하)
그러나 부평초 같은 인생 꿈과 같으니,
기쁨이 얼마나 되겠는가?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옛사람이 촛불 잡고 밤에 노닌 것도
진실로 이유가 있었으리라.
況陽春召我以煙景(황양춘소아이연경)
더욱이 화창한 봄날 아름다운 경치로
나를 불러주었고
大塊假我以文章(대괴가아이문장)
조물주가 나에게 문장을 쓸 수 있는 재주를
빌려주었으니
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
(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락사)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동산에 모여,
세상의 즐거운 일을 말하네
이 시의 첫 구절 ‘천지는 만물의 여관’은 인간이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마치 이 세상의 주인인 듯 생각하지만, 사실은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에 불과함을,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구절 ‘광음 같은 세월은 백대를 지나가는 나그네’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인간은 시간을 붙잡을 수 없음을 새삼 일깨워 준다.
또한 이 시는 인생의 허망함이나 슬픔, 덧없음보다는, 화창한 봄날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벗들과 음식과 술을 나누고 시를 쓰고 읊으며 놀 수 있다면 이는 덧없는 인생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날의 시인들도 푸른 나무가 우거지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공원에 모여 새로 지은 시를 낭송하고 음식을 나누는 시회(詩會)를 갖곤 하는데, 이는 이백이 살던 당나라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문인들의 모임, 즉 아집(雅集)의 전통이라 하겠다. 우리도 가정에서 부부가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며 서로 정담을 나눈다면, 그 식탁은 이백이 시로써 노래한 춘야도리원(春夜桃李園)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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