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포동포동한 얼굴에 공주 패션. 1997년의 양파(본명 이은진)는 그랬다. 그로부터 4년, 스물 두살 양파는 야윈 얼굴에 눈물이 뚝 떨어질 듯한 눈이 더 커보이는 숙녀다.
외양만 바뀐 것이 아니다. "2, 3집 때는 1집 때의 양파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 싫었어요. 이제 좀 여유가 생겼는지 거리를 둘 수 있어요. 동요없이."
가수, 특히 여성 가수에게 ‘아이돌 가수로 출발했다’ 는 사실은 적잖게 위험하다. 무엇보다 기획사 전략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보면 ‘평생’ 가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수능시험날 쓰러지는 바람에 시험을 치르지 못했고, 지난해 보스턴 버클리음대에 진학해 두 학기를 마쳤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웠다기 보다는 어떻게 음악을 해야 하나,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라면 얕잡아 보고, 싱어송 라이터라면 ‘뮤지션’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많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태도의 문제 아닌가요." 하지만 그 역시 ‘싱어송 라이터’이기에 이 말은 공연히 폼만 잡는 뮤지션이 되지는 않겠다는 결심으로도 들린다.
더 야무지게 뭔가 보여주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양파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은 노래를 들어 보면 더욱 확연하다. 한창 R&B에 빠져 있을 때, ‘고교생 R&B 가수’ 라는 컨셉에 맞추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이제는 그런 컨셉에 맞추기 보다는 진짜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발표한 3.5집 ‘버클리에서 온 편지’ 에서 노래가 훨씬 자연스러워진 듯하더니, 이번 음반에서는 ‘노래 맛’이 제대로 살아있다.
"사람들은 제가 R&B를 부르다 그냥 발라드로 바뀌었다고만 생각하겠죠. 하지만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이 찾으려 노력 중이죠. 예전보다 기교는 오히려 줄어든 것 같아요. 노래를 해석하는 힘이 나아진 이유겠지요."
음반의 제목 ‘Perfume’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다가 지었다. ‘사랑은 청각이나 시각이 아니라 냄새에 도취되는 것" 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R&B를 주조로 한 발라드 ‘스페셜 나이트’(작사 양파ㆍ작곡 김덕윤)는 자연스런 발성이 자연스럽게 사랑의 노래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주효했다. 벌써 20만이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 ‘그대 없는 나’ 역시 타이틀 못지않게 반응이 좋다.
’어둠속의 댄서’의 주인공 비욕이나 일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즐겨듣는 양파는 7월쯤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칠 예정이다. 길을 걸을 땐 장난감병정처럼 장난스럽게 걷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힘들 때 정신분석학 책을 많이 봤다" 는 양파는 엄청난 독서와 유학생활, 자기만의 시간을 많이 가진 탓인지 한결 성숙해진 느낌이다. 사람, 음악 모두.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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