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건강과 범죄
▶ (조만철/ 정신과 의사)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끔찍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평결을 받은 염승철(17)군이 사건 당시 과연 정상적인 정신상태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논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내려졌다. 배심원단은 “염군의 범행 전후 행적과 진술 등을 볼 때 염군이 사건 당시 정상적 정신상태가 아니었다는 변호인 측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이 없다”며 염군이 온전한 정신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검찰측의 주장을 만장일치로 인정했다.
이번 재판은 “어떻게 어린 아이가 그처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등 여러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재판부는 결국 염군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아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변호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검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살인 사건 등 중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정신이상’(insanity plea)을 내세워 무죄를 주장하던 것은 한 때 미국에서 유행했다. 특히 돈이 많은 집 자식들은 유명 변호사를 사 이를 구실로 벌을 받지 않거나 형이 경감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한 힝클리는 정신 이상자임을 인정받아 감옥에 가지 않고 아직도 정신병원에 수감돼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평생을 그곳에서 마쳐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져 이를 인정받기 위한 조건도 점차 엄격해지고 있다. 전에는 검사 쪽에서 피고의 정신상태가 정상이었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가 없게’(beyond the reasonable doubt) 증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가주를 포함 대다수 주에서 피고가 스스로 정신 이상 상태였음을 증명(preponderance of evidence)해야 한다.
피고가 정신병자인가 아닌가를 밝히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를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정신과 의사가 정신이상자로 판정한다 해도 법원이 이를 반드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상자인지 여부는 판사 단독심일 때는 판사가, 배심원 재판일 때는 배심원이 결정한다. 드물지만 ‘죄는 있지만 정신이상’(guilty but insane)이라는 판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판정할 능력은 있지만 정신이상은 이상이라는 얘기다.
그럴 때는 교도소 내에 있는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81년 이후 일리노이나 미시건 등 일부 주에서 시작했다. 이런 경우 한 두 달 후 치료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오렌지카운티에서 20년 전 여러 명을 살해하고 정신 이상을 인정받아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완치돼 퇴원시키려 하니까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반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범행 당시는 물론이고 재판 당시, 형 집행 당시 정신 상태도 문제가 된다.
수감 중 정신 이상자임이 확인되면 일반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못한다. 이 때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치료를 해줘야 하는 지 말아야 하는 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치료를 해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면 이 수형자는 사형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한인들 가운데도 가끔 정신착란 증세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본다. 몇 년 전에는 한인 여성이 출산 후 우울증으로 갓난아이를 집어 던져 죽인 경우도 있었다. 이 여성은 정신 이상이 인정돼 집행 유예를 받았다. 과거 정신병력이 있는 경우, 거듭 범죄를 당해 범죄 노이로제가 걸린 경우, 여성들이 출산 전 후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경우 등은 정신병에 의한 범행으로 인정받기가 비교적 쉽다.
아무튼 요새는 가만히 있다 사건이 터진 후 정신 이상을 주장하는 것은 잘 통하지 않고 있다. 주위 친지 중 좀 이상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미리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 정신 질환자의 흔적을 남겨 두는 것이 나중에 사고가 생겼을 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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