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두울 으샤”
소년시절,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쌀가마니만큼이나 커다란 바위덩이를 언덕 아래로 굴러 내리고 있었다. 공차기나 기마전을 하기에는 버려진 묘터가 제격이었으나 이곳 저곳에 석등이나 돌기둥이 버티고 있어서 이놈들부터 치워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을 할 때는 내 편과 네 편이 없이 하나가 되어 열심이었다. 그러나 일단 청군과 백군으로 편이 갈라지면 완전히 딴 사람들이 되었다.
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중에도 어떤 때는 앙금이 남아 곧잘 다투었다. 네 편 내 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친구가 적이 되고 형제지간의 혈연까지도 무시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편을 가르고 일단 어느 편엔가 속하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겨야 하는 이런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가까운 친지들이 벌이는 ‘고스톱’이나 친선 장기판에는 ‘낙장불입’이니 ‘일수불퇴’니 하는 인정머리 없는 낱말들이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라 부르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외동아들이나 외동딸도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런 ‘우리’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편을 가르고 있다. “우리끼리 얘긴데…” 하고 말을 함으로써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라는 편에서 제외시켜 적을 만든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 사는 우리들인데도 도민회니 동창회니 하는 이름으로 편을 짜 놓고 ‘우리’라고 불러주니 참여를 아니할 수도 없고, 그래서 발을 들여놓고 보면 어느새 저들은 회장편, 이사장편을 갈라가며 또 다시 ‘우리’라는 저들의 편에 서라고 한다. 맞장구를 치면 다른 편의 적이 되고 그렇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 이 편에서 제외되어 소외되니 걱정이다. 누구의 제안이 현실성이 있고 옳은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안자가 누구의 편인가에 따라 대세가 결정된다.
뉴욕 한인회관 관리위원장으로서 한인회관이 만성적자로 내버려야 할 입장이 되고 보니 아주 근본적인 수술과 대책이 없이는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있는 그대로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그러다 보니 과거에 잘못된 일들을 비판해야 했었다.
그 과정에서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분간이 서지 않는 혼미한 상황들이 생기곤 한다.
커뮤니티 일을 할 때 아군이건 적군이건 가르지 말고 대표자를 단순히 ‘우리’를 대신해서 애쓰는 일꾼으로 생각하고 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희남<뉴욕한인회관 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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