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 <종교전문기자.목회학 박사>
"하루하루가 즐거운 곳이 있다면 그 곳이 바로 천국 아니냐?"고 어느 친구가 질문했다. 맞는 말이다. 재산을 많이 쌓아 놓은 사람이 있다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의 하루하루가 더 많은 욕심으로 인해 즐겁지 못하다면 그가 가진 재물도 그의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방편은 될지언정 삶의 목적은 될 수 없다.
행복의 조건을 수없이 많이 외는 사람이 있어도 행복해 질 수는 없다. 행복은 이론이 아니라 삶 속에 살아 생동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행복은 자기 자신 행하기에 달려 있다. 행복은 자신의 욕심과 반비례(反比例)되는 곳에 있다. 욕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은 감소된다. 반면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은 증가된다.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욕심’에 대한 정의다. 국어사전에 욕심(慾心, 欲心)을 찾아보니 "재물이나 잇속 따위를 도리나 분수에 벗어나게 탐내거나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 또는, 제 능력에 벗어나거나 제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해내거나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돼 있다. 밥 한 그릇만 먹어도 배가 찰 때, 세 그릇 먹는 것은 욕심이 될 수 있다.
욕심은 때로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우화 중 욕심 많은 농부 이야기를 통해 욕심이 화를 자초하는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한 천사가 욕심 많은 농부에게 말했다. "특별히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라는 하늘의 분부가 자네에게 내렸네. 그러니 자네가 하루 동안 달릴 수 있는 크기만큼의 땅을 주겠다"라고 천사는 농부에게 약속했다.
농부는 천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기가 갖고 있는 말 중 가장 잘 달리는 말을 골라 타고 천사에게 감사의 말도 없이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농부의 몸은 곧 땀에 흠뻑 젖기 시작했다. 그는 쉴 여유가 없었다. 쉬면 그만큼 땅을 적게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너무 말을 재촉하였기에 말도 지치고 농부도 지쳤다. 그렇게 달려 해질 무렵이 됐다. 그는 처음 천사와 만났던 자리로 돌아왔다.
농부는 짧은 하루 동안 너무 많이 달렸기 때문에 하마터면 천사와의 약속 시간에 돌아올 수 없을 뻔했다. 그러나 농부는 너무나 정확한 사람이었기에 제 때에 맞추어 천사에게로 돌아올 수는 있었다. 천사가 말했다. "이제 오늘 자네가 돌아온 이 땅은 모두 자네의 것일세!" 천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농부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죽은 농부는 친구들에 의해 땅에 매장되었다.
마지막으로 차지한 그 농부의 땅은 고작 한 평에 불과했다. 욕심이 가져다 준 결과는 결국 농부가 죽어 묻혀 차지한 작은 땅밖에는 없었다.
국어 사전에 찾아보았던 욕심(慾心)은 욕(慾)에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 욕을 일으키는 것은 마음이란 뜻일 게다. 여기서 욕심은 마음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욕이 일어남도 마음이요, 욕을 억제하는 것도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의 신비만 해도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하물며 보이지 않는 마음(心)의 신비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흔히 마음과 육체를 나무에 비교하면 마음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 해당되며 육체는 보이는 나무 기둥과 가지와 잎 혹은 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욕심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마음 작용 여부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안 생기기도 한다. 도인이 따로 없다. 욕심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이 도인이다.
어떤 친구가 또 질문했다. "자네는 도인 같은 얘기만 한다"고. 나는 답했다. "내가 욕심 없이 살아가지 못하니 내 안의 모순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쓰는 것뿐"이라고.
욕심을 버리고 살아간다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 들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게 쉽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던가. 알면서도 잘 못하는 게 인간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은 약하다고 하지 않던가.
예수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며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라 했다.(마태26:41) 인간 약함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말이다. 하루하루 즐겁게 천국을 만들어 살아가려면 욕심을 줄여 가는 길이다. 행복과 욕심은 반비례한다.
김명욱 <종교전문기자.목회학 박사>
myong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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