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뉴욕까지 27시간’
이번 미 동북부 폭설은 나에게 프로펠러 여객기 시대에나 있을 법한 짜증나고 긴 여정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뜻밖의 사태에 대처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를 관찰하는 계기도 되었다.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출장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기 위해 17일 오전 8시(한국시간)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 지역의 폭설로 모든 공항이 폐쇄돼 뉴왁 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순간부터 27시간의 극기 훈련이 시작됐다.
내가 탄 노스웨스트 항공 7편의 원래 비행시간은 도쿄 나리타공항을 경유해 뉴욕 JFK 공항에 17일 오전 10시(미 동부 시간) 도착하는 총 16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두배 가까이 늘어 27시간이 걸렸고 샌프란시스코와 디트로이트를 경유해야하는 불편함까지 겪어야 했다.
서울을 출발할 때만해도 열려 있던 뉴왁 공항이 결국 폐쇄됐고 목적지가 없어진 승객들은 일단 샌프란시스코와 디트로이트에서 대기해야 했던 것이다.디트로이트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JFK, 라과디아, 뉴왁은 물론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뉴욕 인근 지역의 공항 상태와 비행 계획을 모두 알아보아도 공항이 폐쇄되거나 항공기가 결항돼 최소 1~2일간은 디트로이트에서 묵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디트로이트 공항은 뉴욕·뉴저지·보스턴 등 동북부 지역으로의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 중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는 바닥에 종이를 깔고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햄버거, 빵 등으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기다림에 지친 많은 승객들이 당일 동북부 지역으로의 비행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항공사 직원의 말에 인근 호텔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래도 남은 일부는 아직 취소가 안된 한 대의 뉴욕행 비행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이마저 취소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결항이면 숙박비 등 모든 경비를 여행객이 부담해야 할 뿐 아니라 18일 당장 출근을 해야하는 형편이었기에 공항에 남아 비행 일정을 기록한 전광판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디트로이트 공항에 대기하며 기다리는 동안 제설작업에 총력을 기울인 뉴욕 JFK 공항에서는 결국 활주로 하나가 열렸다. 마침내 노스웨스트 1728편을 이용, 17일 밤 9시30분께 뉴욕에 도착했다. 비행기 도착과 함께 승객 전원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몸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긴장하고 힘들었던 27시간의 여정 속에서 한가지 놀란 점은 이런 최악의 사태에서도 미국인들은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은 1~2일간 발이 묶인 사람, 라과디아 공항에 거의 도착했다 착륙이 안돼 디트로이트로 돌아간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모두 지치고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이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행기가 장시간 연착, 결항되면 흔히 화를 내거나 항공사, 공항측에 거칠게 항의, 시위를 벌이는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에 문화적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김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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