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맛 중독
우리 아들이 나에게 가장 자주 주문하는 음식은 김치볶음밥, 육개장, 소시지, 오뎅(어묵)볶음, 매워햄, 스파게티, 라면 등이다. 이 요리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매운 음식이라는 것이다.
김치볶음밥은 김치 썰어넣고 고추장도 조금 넣어 볶기 때문에 당연히 맵고, 육개장은 말할 것도 없다. ‘매워햄’이라는건 우리끼리 쓰는 용어로 원전은 언니네 집. 조카애들이 어린 시절 언니가 김치찌개에 스팸 썰어넣고 끓여준 것을 아이들이 매워햄이라고 불렀는데 나도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같은 요리를 해주게된 것이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소시지 디너로, 매운 맛의 ‘비프 핫 링크’ 소시지를 미국마켓에서 사다가 그릴에 굽고 캔 옥수수 한 통과 야채 샐러드에 따끈한 밥 한 공기를 차려주면 간단하게 한식과 양식을 짬뽕한 디너가 된다.
스파게티가 매운 이유는 소스를 좀 맵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스를 볶으면서 재미삼아 핫소스를 조금 넣어보았는데 아들과 남편이 반색을 하며 좋아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점점 더 맵게 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아들은 심지어 이치반 라면을 먹을 때도 핫소스를 쳐서 먹고, 식당에 가서도 매운 음식만 찾는다. 순두부(섞어 보통맵게), 비빔냉면, 짬뽕, 쫄면, 육개장, 떡볶이 등 매운 것 일색이다.
열살 전후하여 매운 맛에 입맛을 들이고 난 후 아들이 점점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운 맛에 중독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 맵게 먹어본 음식을 맵지 않게 만들어주면 맛이 없다며 밀어내는 것이다. 자극성 있는 음식에 입맛을 길들이면 더 자극성 있는 것을 찾게되고 그보다 자극이 덜한 음식에 대해서는 정확한 미각을 잃어버리게 되는가 보다.
매운 맛이 중독성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라면들의 획일적인 매운맛 때문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80년대초만 해도 한국의 라면은 모두 순한 맛이었다. 아니 순한 맛이고 매운 맛이고가 없이 그때 라면은 모두 같은 라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매운 맛 라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장을 휩쓸어버렸고 불과 몇 년만에 마켓에 가보니 오리지널 맛을 지닌 라면은 일제 이치반 밖에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한국음식에는 유난히 맵고 짠 자극성 강한 음식이 많다. 어려서부터 매운 김치와 고추장, 강한 맛과 향을 가진 된장, 청국장을 많이 먹고 자란 40~50대 이상의 많은 한인들이(특히 남자들) 꼭 한국음식만을 고집하고, 서양음식의 섬세한 맛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음식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양식을 먹고 집에 오면 먹은 것 같지 않다며 라면을 끓여 먹는다든가,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치 깍두기로 입가심을 해야 속이 편하다고 하는 말들이 바로 다 그런 것이다.
그런데 원래 우리 고유의 한국음식은 지금처럼 짜고 맵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궁중요리 연속극 ‘대장금’을 보아도 요리에 양념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는 음식의 재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그 재료 고유의 맛을 얼마나 잘 살려서 조리하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내 말은 김치와 된장 고추장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치와 된장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 음식인지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이지 맛이 강하기 때문은 아니다.
맵고 짠 음식은 성인병에도 좋지 않고 위암의 원인도 된다고 한다. 지나치게 단 맛도 쓸데없이 칼로리만 높이고 아이들을 하이퍼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 양념을 조금씩 줄여서 요리하자. 그리하여 맵고, 짜고, 시고, 단맛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하고 섬세한 맛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음을 혀로, 코로, 눈으로 즐기며 보다 깔끔하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누리며 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