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수만 보호계획 맞서 새 쫓기 나서
기업도시·웰빙특구 물거품 환경부와 대립
“철새와 사람이 함께 살 수 없다면 사람이 나가야 합니까 철새가 나가야 합니까.”
충남 천수만 일대를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으로 지정하려는 환경부 계획에 반발해 이 지역 주민들이 철새 서식지 일부를 불태웠다.
천수만 간척지B지구 내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 주민 400여명은 16일 오전11시 부석면 가사리에서 생존권을 주장하는 집회를 갖고 철새 서식지인 가사천변에 불을 놓으며 철새 퇴치운동을 벌였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가사천변에서 지역 주민들이 16일 철새도래지인 갈대밭에 불을 놓고 폭죽을 터뜨리며 철새퇴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서 이들은 천수만 일대 생태자연도1등급 권역지정 계획에 반발하며 시위를 했다. 서산=연합
주민들은 갈대숲에 볏짚을 깔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이고, 폭죽을 터뜨려 왜가리 등 철새 수십마리를 내쫓았다. 이 불로 갈대숲 1,000여평이 탔으나 40여분만에 주민 요청으로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진화됐다.
주민들이 ‘철새와의 전쟁’ 시작한 이유는 B지구 간척지에 추진되고 있는 기업도시ㆍ웰빙레저단지 조성 사업이 환경문제를 이유로 무산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태안군은 현대건설 소유의 남면과 태안읍 일대 B지구 420만평에 스포츠파크와 골프장, 생태공원 등을 갖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건설키로 하고 지난달 14일 문화관광부에 시범사업 지정신청서를 낸 상태다.
서산시도 2010년까지 부석면 일대 B지구 175만평에 3,500억원을 들여 숙박시설과 생활체육공원, 웰빙단지, 생태공원, 간척문화공원, 대중골프장 등을 갖춘 ‘복합 웰빙레저단지’조성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이 생태자연도1등급 권역으로 지정되면 개발행위가 제한돼 이러한 사업들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태안ㆍ서산 두 지자체는 이에 따라 천수만 주변을 기존 3등급 지역 또는 별도관리지역으로 유지해줄 것을 13일 환경부에 요청했다. 12일에는 주민들이 생태자연도1등급 권역 지정 반대 의견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주민대표 김진옥(64ㆍ서산시 부석면 이장단회장)씨는 “기업도시와 웰빙레저특구 개발로 지역경제가 도약하려는 시기에 환경부의 조치는 주민들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다”며 “철새 때문에 지역개발이 무산된다면 철새가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태안군 남면 이장단도 10일 “환경부의 계획은 지역 현실을 무시한 행정”이라며 탄원서 제출과 상경시위를 결정했다. 이들은 또 겨울철새가 오는 시점을 겨냥해 먹이를 없애기 위해 추수 후 볏짚 태우기와 논갈이 등을 적극 추진키로 결의했다.
철새 서식지가 훼손되는 등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역환경단체와 조류학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42)사무국장은 “세계적 철새도래지인 천수만을 보전하기 위한 생태자연도1등급 지정은 당연한 조치”라며 “철새와 주민이 함께 잘살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지난 14일 환경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조류학자 김현태(37)씨는 “이 지역이 훼손될 경우 국내 철새 이동경로와 서식지가 완전히 바뀐다”며 “개발행위와 서식지 훼손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산 간척지AㆍB지구는 동북아시아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3년전 현대건설이 A지구를 일반분양한 이후 농약사용 급증 등으로 철새들이 B지구로 서식처를 옮기고 있는 상황이다. B지구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저어새가 최근 발견됐으며, 희귀조류인 장다리물떼새와 호사도요의 서식지다.
서산=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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