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모목사(이승만박사 뉴욕기념사업회 회장)
이승만박사는 조국 해방을 예언한 선각자였다. 1942년 6월 미국의 소리(VOA) 단파 방송을 통해 “일본은 곧 망합니다. 조국 동포 여러분 해방이 곧 올 것입니다.” 당시 이승만박사의 육성 방송은 일제의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는 한국 백성에게는 하늘이 내리신 희망의 소리였다. 그의 육성은 조국 해방을 예언하는 선지자의 음성과 같았다. 그는 미국에서 1941년에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라는 책을 썼다.
“나는 왜 미국이 일본을 방임해 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이 강해지면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일본의 침략근성을 모르고 있다. 일본이 섬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일본을 먼저 눌러야한다.” 몇 달 안 되어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1941.12.7)하였으니 참으로 세계정세를 바로 보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나라를 재건하는 국회를 조직하고 국회의장으로서 첫 사회를 볼 때 “대한민국 독립민주국회 제1차 회의를 여기에 열게 된 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정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껏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모두 일어선 가운데 감리교 목사인 이윤영의원의 기도하는 목소리가 의사당 안에 퍼졌다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음으로서 하루를 시작하였고 식사 때 마다 “우리에게 주신 음식을 우리 동포들도 다 먹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다. 1950년 12월 25일 당시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기울어져 갈 때 이승만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는 정동제일교회에 찾아와 성탄절 장식 하나 없고 난로 불 하나 없는 춥고 황량하고 쓸쓸한 예배당 안에서 수십 명의 교우들과 예배를 드리며, 이대통령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니 아무리 강한 적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기어이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격려하였다.
또한 4.19의 소식을 듣고 “불의를 보고도 항거하지 못하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총에 맞아 부상당한 학생들을 병원으로 친히 방문하여 “내가 맞아야 할 총을 학생들이 맞았다”며 비통해 하였다. 대통령직 하야 선포 후, 이제는 민간인의 신분이니 ‘관1호’차를 탈수
없다고 하여 경무대에서 이화장까지 걸어가려는 그의 성품 속에서 겸허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분은 부정된 재물을 모으지 않았다. 청빈한 기독교의 장로로 참 그리스도의 사람이었다고 본다.
이승만박사의 정치적 선견지명과 강력한 의지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건국조차 불투명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처음부터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북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조국이 해방되자 소련군은 신속히 북한에 진입하여 공산화 조직을 가속시켰고 해방 다음해인 1946년 2월에는 북조선 인민위윈회라는 사실상의 정부가 들어섰고 김일성이 위원장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한반도의 분단을 기정사실로 밀어붙인 것이다.
오늘날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은 이승만과 미국이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고 그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은 이승만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려하고 있다. 이들은 다 날조된 역사를 고집하는 자들로서 심지어 6.25 전쟁은 남한이 먼저 침략했다고 주장한다니 땅을 치고 개탄할 일이다. 이것은 북한 공산당과 소련이 줄 곳 선전해오던 내용과 같다.
이승만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한미방위조약 쟁취, 반공교육으로 구축한 튼튼한 안보질서, 현대화 민주군대 그리고 잘 교육받은 노동력 등등으로 60년대의 국가 경제발전의 토대를 이룩한 건국업적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승만대통령의 강력한 한미방위조약 쟁취와 반공정책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수호와 남한을 공산화에서 막아낼 수 없었다고 본다.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선생을 영웅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 협상은 이승만대통령을 폄하하고 남한의 선거를 방해하며 나아가 북한정권의 수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소련공산당의 기만술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미 소련은 남북협상 당시 북한 정권의 수립절차와 일정을 일일이 북한공산당에게 지령하고 감독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런 대책 없이 미소합작 신탁통치를 운운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이승만박사의 건국노선이 아닌 김구선생의 주장대로 좌우합작을 했다면 동구라파 국가들처럼 한반도는 분명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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