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영목사(오클랜드한인연합감리교회)
성경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
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 중에 크게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첫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중심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교육천국이라고 하는 미국의 어린아이들은 자아 중심의 교육에 의해 병들어가고 있다. 어떤 삶이 자아 중심의 삶인가? 내 기분에 좌우되는 삶이 자아중심의 삶이다. 내 욕심에 끌리는 삶이 자아중심의 삶이다.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삶이 자아 중심의 삶이다.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중심한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막강하다. 자녀들이 돈 때문에 직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을 본다. 힘들게 직장을 얻어 직장 상사들로부터 총애를 받고 신임을 받으며 잘 나가다가도 갑자기 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싸는 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삶처럼 보인다. 재물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인은 명예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 예배가 예배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에 유혹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쾌감을 가져다주는 찬송, 쾌감을 가져다주는 메시지, 쾌감을 가져다주는 이런 저런 프로그램...어떤 선배목사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예배가 무너지고 있다고 슬퍼하며 글을 쓴 것을 읽어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쾌락을 위한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향력은 교회에도 어김없이 스며들고 있다. 그리스도 문화는 말초신경적인 쾌락의 문화 이상의 것이다. 그리스도의 문화는 하늘의 평화와 기쁨과 감사로 아름답게 장식된 문화다.
그리스도인은 권세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다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습관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권세는 다스리는 자가 즐겨 사용하는 무기다. 다스림의 기교를 가르치고 배우기에 세상은 열심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다스림이 아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다. 남을 시키고 부려먹는 일에 습관화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권세를 위해 사는 사람의 잘못된 풍조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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