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유음식 두부의 기원”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로 인체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으면서 많은 영양소를 우리 몸에 공급해 주고 있어 동양의 가효(佳肴), 즉 술안주라고 부른다. 중국 명(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이 1596년에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이나 우리나라 황필수가 1870년경에 쓴 [명물기략(名物紀略)]과 [재물보(才物譜)]에 두부(豆腐)는 기원전 2세기경 한무제(漢武帝) 때 손재간이 좋았다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
고 기록 되었다.
물론 우리의 고전(古典)에는 [본초강목]을 근거로 쓰여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두부의 발상지라 할 중국의 안휘성(安徽省) 회남시(淮南市)에 유안의 무덤이 있고 그 인근에 두부의 발상지라고 적힌 비석이 서 있다.
한편 회남시에서는 지금도 유안의 생일인 9월 말에 두부의 종주국임을 주장하며 두부제를 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중국에서 두부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오대(五代)말 부터 송나라 초기(서기 약 960년경) 도곡(陶穀)이 쓴 [청이록(淸異錄)]이다. 그렇다면 [본초강목]이나 이를 근거로 기록한 우리의 [명물기략] 혹은 [재물보]의 최초로 두부를 만든 사람이 희남왕 유안이라는 설은 신빙성이 없는 전설에 불과하다.
전한(前漢)(BC200년) 시대는 만주일대를 국토로하는 고조선(古朝鮮) 시대이며, 한나라가 고조선에 한사군을 설치한 것은 BC 108년부터다. 당시는 콩의 원산지가 만주지역과 한반도이고 그외 중국지역에서는 콩이 생산되지 않았다. 두부를 만드는 주재료인 콩이 없는데, 두부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의문과 함께 [본초강목]의 두부의 기원은 신빙성이 없는 전설에 불과하다.
북한의 고고학자 도유호는 1959년에 출토된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 유물인 토기의 밑바닥에서 팥, 조와 더불어 탄화된 콩이 출토되었는데 오늘날 재배종과 그 크기가 비슷하여 재배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또한 1972년 경기도 양평군 팔당 수몰지구에서 밑바닥에 콩의 무늬가 있는 청동기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이러한 유물과 문헌적 고찰을 통하여 볼 때 콩의 원산지에 해당되는 옛 고구려땅과 한반도에서의 콩재배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청동기 시대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콩 재배 역사는 문헌상으로 볼 때 중국의 삼국지 위지동이전 부여조에도 土地宣五穀不生五果(토지선오곡불생오과) 승진조(升辰條)에 土地肥美宣移種五穀及稻(토지맥미선이종오곡급도)라는 기록이 있는데 오곡에 콩이 포함되므로 삼한시대에 이미 콩이 재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 식물병리과에 있는 A. E. Dorrance와 A. F. Schmitthenner는 미 농무부 콩생식질수집소(Soybean Germplasm collection)에서 미국 여러 생산 지역에서 심한 피해를 일으키는 콩 역병균에 대한 단일 저항성이 새로운 레이스 출현으로 새로운 저항성원이 필요하게 되어 새로운 저항성원 탐색을 통해 한국이 콩의 원산지임을 추정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시험된 887개 수집콩들 가운데 55.5%는 부분저항성이나 내성 수준이 높았다. 모든 레이스들에 대해 저항성이었던 수집콩들과 부분저항성 수준이 매우 높았던 수집콩 대부분은 한국에서 수집된 것들이었다. 이 결과들로 볼 때 한국이 Rps 유전자와 부분저항성 모두에 대해서 P. sojae에 많은 저항성원들을 가진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 지역이면서 야생콩, 중간콩, 재배종의 각형이 가장 많은 곳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곳이 바로 만주 남부이다.
만주 남부는 본래 맥족의 발생지로 고구려의 옛 땅이니, 콩의 원산지는 결국 우리나라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는 지금 콩 생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이 차지하고 있어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콩 생산량의 대부분은 만주와 한반도였다. 일찍부터 재배된 우리나라의 콩은 중국에도 전해졌다. 이때가 7세기경이니, 중국의 시경에는 제나라 환공이 산융에서 비로소 콩을 중국에 가져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청이록]이 두부에 관한 최초의 문험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두부가 만들어 졌다 해도 콩이 중국에 들어 간 7~9세기 중반일것으로 추청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부를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 졌느냐 하는 문제다.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 의하면 우순(虞舜)<순제(舜帝):오왕의 한 사람> 초의[신지(新志)]에 이르기를 한 도사(道士)가 숙유(菽乳)를 즐겨 먹었다는 것이다.
이 성우는 [한국요리문화사(韓國料理文化史)]에서 숙유를 두부(豆腐)로 표현하면서 희남왕대보다 훨씬 앞서 이 내용이 전설에 불과 하다고 했다. 숙유가 콩으로 만들지 않고 우유로 만들었다고 하면 이미 그건 두부가 아니다. 북방(北方) 유목민족(遊牧民族)]들이 우유(牛乳)나 양유(羊乳)의 프로틴(protein)의 산이나 효소를 응고시킨 보존형식의 유가공품(乳加工品)인 유락(乳酪)이 중국 중원(中原)에 들어가 숙유가 되고, 이 숙유가 유럽에 전해져 요구르트(youghurt 漿酪)나 치즈가 된 것이다.
한편 이 유단백질(乳蛋白質) 가공법을 응용해 콩을 이용한 대두단백질(大豆蛋白質) 가공법으로 만든것이 바로 두부(豆腐)이다. 우리 민족이 유목계이고 만주를 비롯한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라고 볼때 두부는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발명품일 것이라고 이성우교수는 자신이 저술한 [한국요리문화사]에서 추측한 것 처럼 두부는 우리 음식임에 틀림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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