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업과 윤회(業과 輪廻)
민상기(맨하탄 거주)
불교는 인도의 힌두사상 전통 속에서 싹튼 종교이다. 불교가 힌두 사상의 골격인 영혼불멸과 카스트(Caste)제도를 부인하는 점에서 거의 혁명적 출발이었지만 업(業·Karma)과 윤회사상을 답습했다는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
영혼불멸을 믿는 힌두 사상은 죽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 다른 육체를 찾아 영원히 살아야 하니 윤회의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는 윤회의 주체가 되는 영원히 살아야 할 실체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순간순간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모든 것이 연기적 관계 속에서 변하기에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이다(諸法無我).
불교경전에 업과 윤회사상(Samsara)의 취지가 실려 있지만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윤리의식을 장려하기 위한 방편(方便)의 뜻이지 그 자체가 우리가 깨달을 내용(도달할 목표)은 아니다. 배는 강을 건너기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지 배가 인생의 목표는 아닌 것이다. 힌두사상의 업과 윤리 이야기는 초기 브라마니즘에 해당되는 베딕(Vedic) 문헌시대(BC.1500-BC600)에는 없었으나 우파니샤드(BC600) 문헌에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힌두사회의 카스트제도는 힌두사상 처음부터 등장한다. 카스트는 어원적으로 칼라(Color)와 유관하기에 백인계통의 아리안(Aryan)족이 인도 원주민과의 차별의식에서 카스트 제도가 출발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계급사회에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사이에 정치, 경제 및 사회면에서 불평등 관계에 따르는 제반문제를 해결할 논리적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급에 속하는 브라만(Brahman)들은 종교지도자로서 카스트 제도가 인위적 착취용이 아니라 신의 섭리에 따르는 종교적 내용임을 내세웠을 것이다(Rig Veda에 나옴).
그러나 신이 왜 불공평한 계급제도를 마련할 수 있느냐는 불평성 질문에 일종의 신정론(神正論)의 논리로 업과 윤회사상은 효율적인 아이디알라지(Ideology) 기능을 할 수 있다. 오늘의 하층계급은 전생의 나쁜 일(業) 때문이니 불평하지 말고 좋은 일을 하면 다음 세상에 높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런 업과 윤회 사상은 엄청난 형이상학적 추측으로 인류경험 영역을 벗어나기에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다. 불교는 관념적 언어의 유희나 형이상학적 추측을 거부하는 실존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주의(Humanism)이다. 불교는 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이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 변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현대물리학(Quantum Physics and String Theory)이 증명해 주고 있다.
개인의 업에 따라 그 개인의 윤회여부가 결정된다면 개인의 업이 그 개인의 독립적 생각과 결과임이 전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란 진공상태에서 독립적인 혼자 생각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와 연기적이며 유기적 관계 속에서의 공동체 삶이기에 개
인의 업에 따르는 절대적 정죄나 보상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군인이 국가권력의 명에 따라 ‘적’을 살상하는 행위가 그 개인의 업으로 축적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이 오로지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선업(善業)쌓기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업의 높고 깊은 뜻은 보상을 받기 위한 이기적 동기 충족에 있을 수는 없다. 힌두사상의 업도 보상을 생각 안하는 업(Nishkama Karma)으로서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죱(Job)도 ‘천당’가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 것이 아니었다. 선업은 그냥 하는 것이다. 불교 최초 경전이라는 수타니파타(Sutta-Nipata)에도 자기 할 일을 했으면 족하다는 뜻에서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라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칸트(Kant)도 선업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땅히 할 일을 한다는 취지(Categorical Imperative)를 주장했다.
오늘날 기복사상에 물든 모든 종교행위는 그 종교가 아이디알라지(Ideology)라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참된 기독교인 본훼퍼(D. Bonhoffer)가 비종교적 기독교를 외쳤듯이 불교도
비종교적 불교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업과 윤회사상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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