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버지, 며느리에게는 좋은 남편, 저에게는 최고의 아들이었는데 그렇게 가버리다니…”
지난 28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차량 폭발로 전사한 미 육군 공수특수부대 소속 최규혁(34) 하사<본보 11월2일자 A4면>의 부친 최상수 초대 웨체스터한인회 회장은 사무쳐 오르는 슬픔에 메인 목을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웨체스터한인회를 처음 창설하고 지역한인회연합회 회장 등 한인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펼쳐온 최 전 회장은 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도, 남을 배려할 줄 알며 모든 일을 스스로 척척해내는 착실하고 듬직한 장남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를 내서 며느리 캐시(34· 한국명 영희)와 손자 제이슨(5)과 함께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 문턱을 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최 전 회장은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 하사가 사고를 당하기 3일전, 집으로 안부 전화를 걸어올 때 최 전 회장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라 부인과 둘째 아들만 통화를 한 것이 아들과 마지막 통화가 될 줄 누가 알았느냐며
통화를 못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고 가슴 아파했다.
최 전 회장은 “며느리 자신도 고통스러울 텐데 아들의 사망 소식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시 부모를 더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착한 며늘아기에게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5살 제이슨과 10달된 켈리는 어쩌라고…며 말끝을 흐렸다. 또 손자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라 장례 처리문제로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빠는 왜 집에 안와’라며 엄마를 다그친다는 말에 마음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며 결국 참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최 전 회장은 앞으로 장례식이 끝나고 며느리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함께 살 작정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7살 때 신시내티로 도미한 후 뉴욕으로 이주, 올바니 뉴욕주립대학과 브루클린 법대를 다니던 최 하사는 법대 졸업을 앞두고 국가를 위해 군대의 길을 택했다.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직전 이라크로 파병되어 만 1년 동안 대테러작전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의 1대 제3공수 특수부대에서 복무했다. 그러던 지난 8월 아랍어 암호 해독관으로 아랍어가 특기였던 최 하사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고 28일 탈레반 저항이 심한 우르즈간 지역에서 작전 수행 중 저항세력이 길거리에 숨겨둔 폭발물이 터져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최 하사의 장례식은 8일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에서 열리고, 하관식은 13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홍재호 기자>
최규혁 하사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전 아들 제이슨과 딸 켈리를 함께 끌어안고 찍은 사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 마치 자식에게 닥쳐올 순간을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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