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야무진 한국여인 야물이’ <4>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제 1장 미국이름
올라아 마을에서 약 1.5마일, 힐로 시내에서 8마일 되는 파나에바 숲 깊숙한 곳에 플랜테이션식 가옥 두 채가 포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집 사이의 간격은 불과 200야드 안 되었는데, 그 공간을 차지한 낡은 홍색 양철지붕과 깎여진 잔디밭과 닭장과 옥외화장실이 아니었던들 정글 숲이 하늘을 가렸을 것이다.
우리 집을 바깥 세계로 이어주는 유일한 길은 중형차 넓이만한 비포장 시골길 하나뿐이었다. 다른 길이라면 파호아제재소를 올라아농원 제분소까지 연결해주고 힐로시 서쪽 방향으로 약 35마일 되는 파우우일로(Pauuilo)에서 끝나는 철길이었다.
이 철로 덕분에, 우리는 비록 시골 같은 외딴 데서 살고 있었지만, 대중용 전동차가 날마다 집 옆을 지나다녔다.
이따금씩 카부스(제동수실) 여러 개를 끌고 기차가 빠르게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뒤에서는 구린 목장냄새가 났다. 열차에 가득 실린 소들은 음~ 소리도 내고 거세된 소들은 되새김질을 하였다.
기차는 동물보다 사탕수수와 관련제품들을 이 제분소에서 저 제분소로 수송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39년의 일이었다.
맏언니(팔 남매 중에서 제일 위이기도 한) 순이가 두툼한 사각형 콩크리트 탱크에서 양동이에 식수를 채우고 있을 적에 11살짜리 동생 뭉환이도 옆에 있는 (2피트 더 낮은 거라서 자기에게는 안성마침인) 탱크에서 물을 받아 채우는 중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이리로 이사오기 전에는 한 때 비누제조에 사용되던 탱크들이다.
여섯 개나 되는 닭장의 꼬꼬들 모두가 물을 기다렸다. “이 무거운 물통을 들고 다니니까 내 발바닥이 넓적해진단 말이야”라고 순이가 자기 발을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렇다면 이 물통 땜에 내 발은 더 길어져서 고등학생이 되면 맞는 신발이 없을 거구, 그럼 구두를 신어야 될 거 같은데.” 뭉환이가 응수했다.
이 층 집 밑에서 애들 노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사면이 트였어도 비 막이가 되어있는 아래층 공간은 닭 사료저장소 겸 아버지가 시장에 내다가 파실 계란과 채소를 분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여덟 살 난 윤성이, 여섯 살짜리 맹성이, 네 살 배기 복성이, 그 아래 두 살 난 한성이는 사료자루나 통속에 들어가 놀았다.
가끔 사료에 섞인 해바라기 씨를 까먹기도 하면서. 닭장 하나를 돌보고 나오신 엄마는 사료 통에 들어간 애기(한성)를 살짝 끌어내어서 윤성 언니한테 건네주고 닭 사료를 양동이에 담았다.
한 손에는 사료양동이를 들고 등에는 한 살짜리 영흥이를 띠 줄로 묶어서 업고 닭장을 향해 가시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땅에 더욱 깊이 파였다.
사료받이에 먹이를 흩뜨려 놓고 보니 숱한 닭들의 붉은 벼슬이 바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서둘러 닭장을 나왔다.
누군가 밖에 사람이 찾아와 서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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