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무골이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존재론적 진지함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는 아침마다 문 밖에서 큰소리로 문안 인사를 외치는 하인이 있었다. 하인이 던지는 문안은 “대왕도 언젠가는 죽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알렉산더는 한시도 죽음의 문제를 잊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었다.
사업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건강하던 친구였는데 사업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쓰러진 후 영영 일어나지 못한 채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그러더니 지난주에는 한 지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 치열하게들 살더니 한창 나이에 하늘로 돌아갔다. 모든 죽음이 다 그렇지만 특히 주변사람들의 세상작별은 타자화 되어 있던 죽음의 문제가 내 의식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된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간혹 임사체험자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보니 이렇더라”고 증언하지만 그들의 말이 죽음의 실체를 깨우쳐 주지는 못한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은 미지의 세계이다. 단 하나,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는 것만이 분명할 따름이다.
누군가 생명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유리잔’에 비유했다. 주머니 속의 유리잔이야말로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깨질지 모르는 물건 아닌가. 죽음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자칫하다가는 바로 깨질만큼 연약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는 뜻일진대 급작스런 귀천을 연이어 목도하니 그 말뜻이 정말 실감난다.
프로이드는 인간에게 삶에 대한 소망과 함께 죽음에 대한 소망도 있다는 가설을 내세웠지만 얼른 피부에 와 닿지를 않는다. 우리에게 죽음은 여전히 막연한 일이요 왠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주제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삶 뒤에 죽음이 오지만 현명한 사람은 죽음 뒤에 삶이 온다고 현인들은 가르친다.
한국에서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책 ‘인생수업’의 저자인 고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 성장단계”라고 말했다. 누구나 죽음을 앞에 두면 자기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 본다. 문제는 많은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데 있다.
80년대 미국인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정신과 의사 스캇 펙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음과 로맨스를 해 왔다. 부모님은 그러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나에게 죽음은 매혹적인 주제였다. 사춘기에 이르렀을 무렵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물리적으로 우리는 덧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죽음과의 로맨스는 찰나적인 존재의 무의미함을 절감케 했다.” 그는 지난해 죽음과의 로맨스를 끝내고 영면했다.
인간은 ‘기저귀’로 시작해 ‘수의’로 끝난다. 한 문화평론가는 이것을 상징화 해 “맹목적인 생의 욕망과 충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저귀 문화’를 넘어서 ‘수의 문화’가 회복될 때 비로소 개인의 삶과 사회는 안전한 길을 달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질주하는 삶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바로 죽음에 대한 의식이란 뜻일 터이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살아 있을 때, 그리고 거침없이 잘 나갈 때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란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은 죽음이 와도 여전히 단단하게 남아 있을 삶의 가치를 얻기 위해 힘쓸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분명 암울한 것이지만 그것을 의식하는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 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친구가 좋아하던 ‘설악산 시인’ 이성선의 ‘미시령 노을’이다. 온 우주의 무게가 아무리 가볍기로서니 무엇이 급하다고 그처럼 서둘러 먼길 날아간 것인가.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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