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에서 ‘굿모닝 나잇’이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DVD로 출시됐었다. 1978년 3월16일 ‘붉은 여단’이라는 극좌 무장단체가 이탈리아 전 총리이자 집권당 기독민주당의 당수 알도 모로를 납치한 사건을 다룬 영화로 마침 이 사건에 대해 관심 있게 읽고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납치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경찰과 병력을 수색작전에 동원하지만 속수무책이다. 테러리스트들은 구속된 동료 13명을 풀어주지 않을 경우 기민당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처형하겠다고 위협, 피말리는 드라마가 55일간 계속된다.
모로는 30년 넘는 동지이자 친구 또는 선후배들인 총리, 대통령, 장관들과 교황 등에 보낸 편지에서 “납치 범행이 결실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인 법적 원칙의 이름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서는 안된다”며 인질교환을 간청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테러리스트들과 일체 협상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편지들을 읽으면 결국 그가 11발의 총탄에 맞아 숨진 순간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자들이 붉은 여단이 아니라 기민당이라고 여겼다는 비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테러에 굴복하지 않은 이탈리아는 당시 세계 각국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모로의 저주를 오늘날까지 느끼고 있다. 대대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단서 하나 못 잡은 수사당국의 무능함과 정부의 단호함은 곧 의심을 일으켰다. 공산당을 연립정부에 포함시키려는 모로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해 정보국내 보수세력이 그를 제거했다는 음모설이 등장했다. 나아가 기민당 지도부가 권력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라는 의혹이 2차례의 의회조사와 4건의 재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 3월 자국 기자가 탈레반에 의해 납치됐을 때 세계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5명의 탈레반 죄수와 교환한 것이 아닐까? 인질로 재미를 본 탈레반이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것은 아마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23명의 동족이 납치된 악몽속에서 20일째 가슴을 조이며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우리들에게 모로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김빠지는 얘기지만 인질상황에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질 납치는 70년대 유럽에서도 그랬고 지금 중동에서도 그런 것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소수의 그룹이 정부를 욕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극의 책임을 정부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교훈을 찾는다면 피해자나 교계나 정부나 미국에 책임을 묻기 전에, 인질사태를 이념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우선 귀중한 생명들을 구하는데 뜻을 합해 단결할 수 있으면 한다. 월드컵 때보다 지금이 더 의미 있지 않은가. 그리고 언론에서는 테러리스트들에 놀아나지 않는 침착하고 책임감 있는 보도가 있었으면 한다. 테러리스트들의 무기는 총과 더불어 말, 즉 테러와 프로파간다이기 때문이다.
우정아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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