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제자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네요. 다들 백발이 성성하고... 벌써 은퇴를 했다는 제자들까지 만나니 언제 그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습니다.”
여든을 넘긴 파란 눈의 미국인 스승 3명이 10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뉴욕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0여년간 한국의 한남대학(대전대학&숭전대학) 캠퍼스에서 추억을 나눴던 한국인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남대학교 미주 총동문회(회장 이영철) 제2차 연례총회를 겸해 10일 뉴욕 플러싱에서 열린 사은의 밤 행사에 초청된 미국인 스승은 모가연(79, 미국명 캐서린 모어), 모요한(81, 미국명 존 모어) 박사 부부와 서의필(81, 미국명 서머빌) 박사 등 3명. 이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돼 전쟁 직후 가난 속에 허덕이던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교육에 헌신하며 그들의 청춘을 바친 인물들이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됐지만 오랜만에 제자들과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만은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입을 모은 스승들은 10여 년 전 은퇴 후 미국에 온 뒤에도 늘 한국이 그리웠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 살다보니 정겨운 한국어를 사용
할 기회가 없었고 더군다나 그리운 한국음식은 구경조차 힘들었단다.
성문학과 교수였던로 모요한 박사는 제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꽃을 건네며 스승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던 그 시절의 감동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도서관장을 지낸 부인 모가연 교수는 일제시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부모 덕분에(?) 한국 전주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이력을 지녔다. 요즘은 한국인 둘째 며느리 자랑에 여념이 없다.
영문과 교수를 지냈던 서의필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옳을 의, 반드시 필’이라고 또박또박 일러줬다. 당시는 한국 신문을 읽으려면 한문을 알아야했던 시절이었기에 한문지식도 보통이 아니다. 한국에 머문 동안 성균관대학에서 동양철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하버드에서 동아시
아학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아직도 한국을 잊지 못해 매년 한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다는 서 박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세계로 우뚝 설 수 있다”며 이달 말로 예정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고.
미국인 스승 3인은 “제자들이 소외된 이웃들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 주길 바란다. 하나님의 은총이 늘 제자들과 함께 하길 기도하며 남은 생을 살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도 자나 깨나 백발이 다 되어가는 제자들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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