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인생을 무슨 일에 보낼까. 보통 70년을 산다고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를 보면 이렇다. 잠자는 시간으로 23년을, 일하면서 16년을, 텔리비전 시청에 8년, 먹는 시간이 6년, 여행으로 보내는 시간이 6년, 각종 다른 활동에 4년 반, 아파서 앓거나 하는 것으로 보내는 시간만 4년, 옷을 입는 시간이 2년, 그리고 종교활동에 보내는 시간은 반년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많거나 적거나… 각자의 삶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간단한 일상생활 외에 아마도 글 쓰는 일에 그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을 것이다. 또한 전 세계를 돌며 봉사활동을 하는 한비야씨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 시간보다 남을 위해 쓰는 시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이 가치를 둔 일에 보다 많은 노력과 마음을 쏟았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가고 한 해가 지나가는 마당에 작은 것에 목숨을 걸고 연연하고 애태우고 마음 상하는 시간들이 어쩌면 인생낭비에 해당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을 여기저기 쪼개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 큰일에는 여유도 배짱도 시간도 없어진 것이 아닐까.
한 선배는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걱정하는 나를 두고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둬’라고 충고했었다. 어차피 지나가는 것들인데, 조금 멀찌감치 바라보며 마음을 너무 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것이었다. 가끔, 지금도 다툼이 있거나 고민이 있거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나는 그때 선배의 말을 되새겨본다. 지나가는 것들인데… 내버려두자. 그러면 가장 중요한 일에 마음을 기울일 여유와 시간이 생길 수 있으니까.
대학교 4학년을 앞둔 겨울이었다. 곧 사회에 나가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그동안 꼭 했어야 하는 일 하나를 못한 것이 떠올랐다. 흔히 필수 도서목록이라 불리는 중요한 책들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해 세뱃돈으로 받은 용돈을 들고 서점으로 달려가 몽땅 책을 사서 들고 왔다. 두 손에 든 가방이 너무 무거워 몇 번을 가다 서다 했어야 했지만 그 어느 해보다 마음이 뿌듯했다. 그리곤 내 방에 틀어박혀 그 책들을 한 권 한 권 숙제처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 읽은 책 하나로 4학년 여름방학 인턴십 면접에서 운 좋게 좋은 점수를 얻어 합격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느라 중요한 일들을 하지 못하다가 마음먹고 시간과 노력을 한 가지에 쏟았을 때 나타나는 좋은 결과를, 그래서 나는 그때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매일을 살다보면 진정 가치 있는 일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이도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누구 생일파티며 돌잔치, 결혼식… 이런 인사치레들을 하느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한 밤중이고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가기 일쑤다. 짬짬이 나는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고 늘 생각해 두었던 일에 할애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의 습관이 이를 붙잡는다.
지난해 교회에서 하는 한 교육 프로그램 면접에서는 내게 ‘일주일에 10시간’을 반드시 써야할 것을 강조했다. ‘하루에 2시간씩 5일’ 까짓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내 생활의 우선순위에서 2시간을 뺀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 그 2시간을 지금 아주 중요한 일에 쓰고 있느냐? 그럴 것 같았는데, 아마도 잠자는 시간이나 텔리비전 보는 시간, 옷 입는 시간 등등에 그냥 조금씩 조금씩 나눠 쓰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살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그 사람이 일생을 무엇에 썼는지, 그 시간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먹고, 잠자고, 샤핑하고, 여행하고, 공부하고, 놀고… 많은 생활의 목록들 중에서 중요한 한두 가지를 뽑아서 그것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보는 건 어떨까.
지나가는 것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된다면, 다른 사소한 것들이 다 지나간 후에 중요한 무언가가 내 이름과 함께 남는다면, 그렇다면 좋겠다.
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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