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여느 때보다 일이 많아 어둑어둑해질 8시쯤 돼서야 사무실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항상 그렇듯, 주차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몇 층에 세웠더라”를 헤아리고 있는데 불현듯 그날 아침 일찍 미팅이 있었고 늦을세라 급한 김에 게스트 파킹하는 자리에 세웠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세울 때는 미팅 끝나고 바로 차를 옮길 생각이었는데 일이 많아 그랬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게스트 파킹을 여기저기 헤매며 내 차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주차 담당자를 찾아갔더니 게스트 파킹에는 원래 2시간 밖에 세우지 못하게 돼 있는데 그 이상 주차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견인되어 갔다고 친절하게도 사진까지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그 늦은 시간, 역시 일이 많아 아직 사무실에 있던 동료 직원에게 부탁해서 차가 견인된 곳으로 갔다. 괜한 실수를 해서 견인비만 날렸네 하며 속상해 했지만 그땐 몰랐다. 그게 그 밤의 시작일 뿐이었다는 걸.
견인된 곳에 도착해서 계산을 하려고 얼마냐고 물었더니 차 앞바퀴의 타이어가 바람이 빠져 추가 계산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바퀴가 바람이 빠지다니. 너희가 옮길 때 펑크가 난 건 아니냐며 항변을 해봤지만 그 쪽에서는 견인이 되기 전에 벌써 바람이 빠진 상태라는 걸 증명하는 건물 주차 담당자의 서명까지 보여주었다. 아까 친절하게도 내 차가 견인되었음을 가르쳐 주던 그 양반이다.
‘Roadside assistant’를 불렀더니 한 시간 내로 온단다. 그래, 이도 없었으면 내가 무슨 수로 이 밤에 타이어를 간단 말이냐. 견인된 곳에서는 타이어를 갈 수가 없다고 해서 차를 빼려고 크레딧 카드를 내밀었더니 적지도 않은 견인비 320달러를 현금으로 줘야 한단다. 그냥 넘어가는 게 없었다.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ATM을 찾았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주유소 등에 비치되어 있는 현금 인출기의 한도는 200달러이다. 당연히 또 한 번 현금 인출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에러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고 주유소 주인은 ATM 기계는 내 소관이 아닐세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할 수 없이 난 추가 현금 인출을 위해 한 블럭 떨어져 있는 다른 주유소까지 갔다 와야만 했다.
이쯤해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타이어를 갈아준 roadside assistant는 내 타이어를 보더니 모서리 쪽에 많이 찢겨져 손을 본다 해도 다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트렁크에 있던 스페어타이어도 한번 구멍이 났던 자리를 메운 흔적이 있고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으니 매우 조심해서 운전하고 내일 당장 타이어를 갈아 끼우라고 이야기 해주며 그 날 밤의 대미를 장식해 주었다.
내가 오늘 밥을 잘 못 먹었나? 아침에 검은 고양이를 봤나? 아니 일 열심히 하다 늦게 퇴근하는 날 딱 이런 일이 생길게 뭐람. 그래 앞으로는 무조건 칼 퇴근하는 거야…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리며 투덜투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애당초 제 자리에 파킹을 했으면 일어날 일도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아침 일찍 미팅이 있어 급히 주차해야 할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겠지만 대부분은 몇 분 더 걸려도 묵묵히 주차 건물 저 위층까지 올라가 주차를 했을 터이다. 이 사회 전체가 도덕 불감증이네 운운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조그만 도덕쯤은 무시하고 있었다. 한순간 편하자고 눈 딱 감고 “이번 한번만”을 외치며 불법 주차를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도덕과 규율을 지키는 건 좀 불편했지만 지키지 않으니 말도 못하게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래 다행이다. 규율을 지키지 않은 벌로 팔이 하나쯤 부러질 수도 있었는데 이쯤해서 끝났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괜히 사소한 것 가지고 불평하지 말고 좀 불편하게 사는 노력을 해보자. 그 때는 좀 불편할지 몰라도 길게 보면 그게 더 편하게 사는 거다.” 비싸게 치르고 얻은 교훈, 며칠 못 가 잊혀지지 않게 자주 떠올리며 되새겨야겠다.
지니 조
힐리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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