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인데,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해서 그런지 살만 찌는 데 그치지 않고 감기가 들어버렸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허탈함도 한몫을 했을 것 같다.
대부분 회사들이 그렇듯 4분기가 시작하며 내년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니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벌써 한해를 마감하는 기분이 들어 왠지 더 허탈한 요즘이었다. 게다가 올 가을에는 그저 행복해만 보여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연예인들의 자살 등 어두운 소식들이 유독 많지 않았는가. 또 신문에 연일 오르내리는 경기침체 뉴스 등을 접하며 한동안 정체모를 심란함에 우울해 있었다.
그러던 며칠 전 한 친구를 만나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교사로 안정된 직장이 있고 남편 역시 잘 나가는 사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토끼같이 예쁜 아이들을 둘이나 키우고 있는, 어느 것 하나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친구였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우린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는 잔잔하게 웃으며 지난 1년 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울증에 특별한 이유가 있겠냐만, 아마도 본인이 학교 경영진과의 의견 차이로 학교를 그만 뒀고, 이후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남편의 사업도 예전 같지가 않았던 것이 원인인 모양이었다.
그저 경제적으로 힘들 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졌단다.
그저 하염없이 죽고만 싶었다고 한다. 운전을 하다가도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불면증 때문에 병원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보면 ‘이걸 모았다가 한꺼번에 털어 넣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건 가족조차도 그의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항상 남을 배려하며 조용하고 차분했던 그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온화해 보이던 친구였다.
그는 이제 운동도 하고 종교생활도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웃어보였지만 난 왠지 그 친구가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아무리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모르게 숨겨둔 아픔이 있게 마련. 친구를 보며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해야 하는 백조 같은 애잔함이 느껴졌다.
만화 주인공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라고 노래했지만 난 외롭고 슬픈 것을 인정하며 울고 싶을 때 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울화병, 심장병, 우울증 등을 얻는 것보다 펑펑 울고, 소리도 좀 지르는 게 훨씬 더 건강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외롭고 상처가 있는 존재임을, 상처의 부위와 종류만 다를 뿐, 인간은 모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버리면 나만 억울할 것도 없고 혼자 외로워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해놓은 것 아무 것도 없이 이렇게 한 해가 간다고, 나만 바보 같다며 자신을 들볶는 대신, 한번 신나게 펑펑 울어보자. 그리고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위로해 보자. 누구나 외롭긴 마찬가지라고.
지니 조
힐리오 홍보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