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바로 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이안 브루마(Ian bruma)가 한국인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한국: 수치심과 맹목적 애국주의’였다.
그는 한국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예술과 현대의 경제 성장에 대해 민족적 자긍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중국, 일본, 미국을 상대로 한 사대주의적 과거에 대한 수치심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1980년대 말이었던 당시 나 역시 한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서 그 두 감정을 다 느낄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에 사는 밥 삼촌을 방문했다. GM에서 몇 십 년을 일한 후 오래 전에 은퇴하셨다. 삼촌은 평생 든든하고 중요했던 대기업들이 이제 대부분 파산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셨다며, 기업의 리더십을 비판하셨다. 오랫동안 회원이셨던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비판하셨다.
삼촌은 잡지 컨수머 리포츠를 몇십년 구독하신다. 최근호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질이 전 세계의 바닥을 기록했다는 것을 읽으셨다며 어떻게 GM 이 ‘훈다이’ 밑으로까지 떨어졌느냐 한탄하셨다. ‘현대’를 ‘훈다이’로 발음하시는 삼촌의 차는 ‘뷰익’이다. 삼촌은 그 차에 대해 자긍심도 크지만 요즘엔 수치심도 만만치 않다.
삼촌은 “게으르고 욕심 많은 미국인들”이라며 한탄하셨다. 사실 미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자국과 자국 문화에 대해 혹평을 해왔었다. 그 혹평과 요즘의 혹평에 차이가 있다면, 요즘은 밥 삼촌 같은 사람들까지 한국, 중국, 인도가 미국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뭔가를 만들고 있지 않니?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똑똑하잖니”
요즘 내가 미국 이민법에 대해 배운 게 많다는 얘기는 삼촌한테 하지 않았다. 전산과 과장이 된지 채 1년이 안 되었는데 이미 H-1B 비자 신청, 영주권 관련법과 영주권 신청에 대해 배운 게 많은 것이다. 막 박사학위를 딴 유학생들을 채용하면서 왜 외국인을 채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식문서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과 교수들은 반 이상이 루마니아인, 인도인, 중국인 등의 외국인이다.
삼촌이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왜 미국인을 채용하지 않느냐 물으실 것이다. 글쎄. 요즘 교수로서의 내 일은 미국 학생들에게 과학, 공학, 기술, 수학을 공부하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요즘엔 “똑똑한 학생들은 금융계로 가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교육계로 가고, 공대엔 아무도 안 간다”는 말들을 진부할 정도로 많이 듣는다. 경제가 나빠져서 좋아진 게 있다면 똑똑한 학생들이 이제 금융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혹 공학을 선택하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는 지금 공대생이다. 게임도 좋아하고, 파티도 좋아하고, 인터넷을 통해 친구를 사귀는 등 공부에만 집중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 왠지 걱정이 된다. 나도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내가 원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무엇을 하든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공학 기술인의 부족’ 과 ‘미국의 패망’ 사이의 상관관계로 인한 정신적 불안이 내 걱정이다. 미국이 아이가 졸업 후 무엇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수만 있어도 좋겠는데.
아이가 공학을 하든 안 하든, 밥 삼촌과는 두 세대 차이가 나는 아들에 대해 국제적 희망을 걸 일이 생겼다. 지난 금요일 한국의 교환학생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었다. 서울에서 온 한 예쁜 여학생이 우리 아들 사진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와, 참 잘 생겼어요. 제 남자친구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그렇다! 아이가 한국인과 결혼한다면 적어도 아내와 내가 유산으로 남겨 줄 천여 권의 한국 책들을 읽을 사람은 생기는 건데. 난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다.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