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주변에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 내에서 인간관계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들은 전문가를 찾기 이전에 먼저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를 믿고 찾아 왔다면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첫째, 상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해주는 자세로 상대의 고통을 잘 들어주자.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정성을 다해 잘 경청해주는 믿을 만한 친구에게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경험만으로도 치유와 위로를 경험한다.
둘째, 평생 동안 기밀보장을 해 주고 소문을 퍼뜨리지 말자. 한인 사회나 교회 내에는 소문이 부풀려져 또 다른 소문을 낳고 그 소문이 또 날개를 펴서 결국 엄청난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난다. 이런 이유로 문제가 생길 때 아무하고도 말 못하고 끙끙 앓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셋째, 문제를 자기 관점에서 함부로 진단하려 하지 말자. 사람들은 오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에 근거하여 상황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인간관계의 문제들 이면에는 제 삼자로서는 알 수 없는 많은 요인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은 한쪽 이야기를 듣거나 양쪽을 듣더라도 한쪽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제공받으므로 정확한 전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는다. 주위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지 않고 함부로 진단을 내릴 때 주변의 따뜻한 지지와 권면으로 쉽게 치유될 수 있는 사람들이 또다시 깊은 상처를 입는다.
넷째, 당사자에게 권면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먼저 자신의 권면의 내용이나 방법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도울 수 있는 것인가를 많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 후에 구체적이고 정확한 근거들을 가지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세로 직접 권면해야 한다. 간접적으로 듣는 소문이나 권면은 그 자체가 큰 고통을 낳는다.
다섯째, 자기 자신을 늘 성찰하자. 한 소년이 길을 가다가 호수에 작은 돌 하나를 던지고 지나갔을 때 이 소년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호수에는 수많은 파장들이 생기듯이 혹시나 내가 별 의도 없이 혹은 선한 의도로 한 말 몇 마디가 남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 큰 파장과 고통을 일으키고 있는데 나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자. 때로는 매우 선한 의도로 남의 가정사나 교우관계나 친구관계에 끼어들었다 해도 방법이 잘못 되었을 때 상대방이 받는 상처의 정도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매우 깊을 수 있다. 악한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남의 인간관계에 개입하거나 소문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경에 나오는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도와 열정을 가지고 욥을 찾아와서 욥에게 이런 저런 권면들을 했으나 욥은 그들을 “쓸데없는 의원”으로 보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에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여 발라준 약이 혹시 소금은 아니었는가?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이 고슴도치들의 집단으로 전락하는데 본의 아니게 일역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지금 남을 돕기 위해 하고자 하는 말이나 방법이 내가 위기에 빠질 때 남도 나에게 똑 같이 해 주기를 바라는 바로 그런 옳은 것들인가? 나는 과연 누군가가 정말 힘들 때 나를 믿고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들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엄예선 / 풀러 신학대 가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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