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의 기원은 5,000 전 인도 고대의 인더스문명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처음에는 종교적인 행법으로서 신인합일(神人合一)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법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개인의 종교와는 상관없이 주로 심신수련을 위한 방편으로 하고 있다. 요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에서 왔으며, ‘결합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의미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그런 자신이 우주와도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다. 요가의 종류가 수없이 많은 것은 그 실천 방법에 따라 붙여진 명칭이 다르기 때문인데, 변화하는 현대인들의 생활방식과 의식 추구에 맞추어 방법, 형태, 목적 등이 다양화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흐르고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요기(요가 수행자)의 삶이라고 본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깊은 곳에 억눌려 왔던 무의식의 큰 덩어리가 풀려난 이후로 수련은 탄력을 받아 집중이 잘 되어 갔다. 명상을 하고자 앉으면 자연스럽게 몸을 푸는 동작이 먼저 나왔고, 잠을 자다 깨어나면 몸은 수련 동작을 하고 있었다. 수련 중에 경험되어진 새로운 신비의 세계가 얼마나 황홀했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점점 그 세계에만 몰두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현실은 가치가 없어지고, 이상의 세계만이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이렇게 계속 집중해 가면 능력 있는 자가 되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을 꿈꾸게도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내게 아무런 능력이 없었을 때에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살 수 있었는데, 수련에 집중하고 집착할수록 오히려 마음은 무겁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온순하고 겸손한 체 하면서 속으로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분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 했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권세를 누리고 싶어 함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은 마치 최면술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았던 것과 같았다.
집착 속에서 에고가 만들어낸 능력은 한갓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음을 깨닫고 그 어둠에서 놓여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결국 그 무게에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이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제서야 하늘 앞에 깊은 참회를 했다. “다시는 속은 텅 비고 겉으로만 요란한 꽹과리 같은 능력을 원치 않겠습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섬기며 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 되어도 감사합니다.” 아,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사랑하며, 단지 사랑하며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작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표면적으로 사랑의 모양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가난뱅이 사랑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의 소망은 예수님처럼 사랑이 충만한 자가 되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사랑을……. 그런데 그 사랑을 나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났다.
고수수<웨체스터 녹지회 요가교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