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던 펜 문학 시상식에 박수쳐 줄 사람이 없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워싱턴을 떠나던 날 나는 마음이 조금 쓸쓸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연락들을 했는지 11명의 여고 동기 동창들과 선배님 그리고 옛날 여고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의 깜짝 출현은 나를 정말 깜짝 놀라게 했다. 예상치 않은 친구들이 나타나서도 놀랐지만 더 놀랐던 사실은 그들 중 6명이 그날 저녁에 결정을 해서 나와 함께 2일간 그곳 문인들과 어울려 문학 캠프를 가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신문에서 수상식 기사와 또 일반인의 참가도 환영한다는 기사를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미리 문의를 했다고 얘기한다.
다음날 새벽 5시, 어둠속에 손전등과 자동차 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만난 친구들을 보며 나는 뿌듯한 행복감에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어느새 그 오랜 세월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다시 여고 교실에 온 것 같았다. 혜란아, 너 어떻게 지냈니? 하는 소리가 마치 너 어제 숙제 다 해왔니? 하는 정겨운 목소리로 들려왔다. 어쩌다 모두 미국에 와서 처음 힘든 세월을 모두 다 잘 견뎌내고 건강하게 우리 다시 만났으니 세상에 이리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니? 서로를 쳐다보며 대견해 하는 얼굴이다. 세월이 그리 지났는데도 변함없는 우정이 그저 고맙고, 오래 못 만났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세월을 넘어서 전해 오는 것 같았다.
우리가 가는 곳은 샌디에이고 쪽으로 2시간 반 쯤 걸리는 워너 스프링(Werner Spring)이라는 유황 온천과 골프장이 있는 곳이었다. 친구들은 그곳에서 나누어 주는 똑같은 셔츠들을 입고 문학 강의를 함께 들으며 사진도 찍고 또 함께 식사도 하였다. 마침 그곳 펜클럽 이사장의 배려로 함께 붙어있는 방에서 머물며 마치 여고 시절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지나간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은 깊었다. 한 번에 여러 명이 얘기한다고 한 명씩 손들고 번호를 붙여서 얘기하자고 해서 또 웃는다. 모두 열심히들 살아왔구나. 그림 그리는 친구 둘은 얼마 전에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미술 전시회를 했다고 한다. 여기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하나도 바로 친구 하나가 그린 거란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이미 떨어져 나뒹구는 젖은 낙엽들을 밟으며 그 여름 뜨거운 태양에 견뎌내고 또 가을 바람에도 버티고 서서 아침 이슬에 빗질한 겨울 소나무 냄새와 유황 온천의 냄새를 맡으며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친구들도 오랜만에 모두 잊고 이렇게 나오니 너무 좋다며 내년에도 꼭 오라고 한다. 그래야 문학 캠프에도 함께 와서 덕분에 좀 유식해지자고 해서 모두 웃었다.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을 한쪽으로 모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끝나지 않는 지난 이야기들이 소설책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세월은 어째 이리도 빨리 간 걸까. 이러다 몇 번 못보고 떠나는 것은 아닐까. 바쁜 미국 생활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올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가까운 곳의 선인장 산은 온 산이 선인장 꽃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꽃의 크기 한 개가 손바닥 3개만큼 커서인지 아니면 모래가 덮여 있어서인지 마치 온 산을 모조품 꽃으로 덮어 놓은 듯 했다.
친구야,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남은 정말 내게 큰 행운이란다. 벗이여 나의 옛 친구여! 유황 온천에 몸을 담구며 아직도 할 말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곳 작은 도시에 유명하다는 애플파이를 먹으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정이 애플파이보다 더 달콤하게 내 몸 안으로 퍼져 전해 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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